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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과 사람/이진우의 외식&경제

현금이 사라지는 시대가 올까

월간 음식과 사람 2021. 3. 1. 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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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과 사람 2021.03 P.46 Marketing point_이진우의 외식&경제

인간이 하는 거의 모든 행위는 경제와 관련이 있다. 그만큼 경제는 우리 삶과 불가분의 관계다. 장기 불황으로 허덕이는 외식업 경영자 처지에선 더 나은 선택을 위한 경제 지식의 필요성이 더욱 절실할 수밖에 없다. 당장의 가게 일로 눈코 뜰 새 없더라도 잠시나마 경제와의 티타임을 가져보자. 경제를 알아야만 돈이 보인다. editor 이진우 MBC 라디오 이진우의 손에 잡히는 경제진행자 photo shutterstock

현금이 사라지는 시대가 올까

‘중앙은행 디지털 화폐’라는 개념

자영업을 하는 분들은 이미 느끼고 있겠지만 요즘은 현금을 쓰는 소비자들이 크게 줄었다. 이건 다른 나라보다 우리나라가 유독 심한데 실제로 우리나라는 상거래의 96%가 신용카드 등 비현금 거래다. 신용카드를 많이 쓰면 세금을 줄여주는 유일한 나라인 우리나라가 이제 전 세계에서 이 비율(전체 개인 소비 지불 가운데 비현금 거래가 차지하는 비율)이 제일 높다.

이 비현금 거래 비율은 영국이 68%, 중국이 65%, 프랑스가 40%. 독일과 일본은 아직 20%에도 미치지 못한다. 나라마다 다른 상황인데, 모든 나라의 공통점은 이 비율이 빠르게 높아지고 있다는 것이다. 생각해보면 당연한 현상이기도 하다. 인터넷 쇼핑이 늘어날수록 비현금 거래는 함께 늘어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와는 별도로 요즘 갑자기 논의의 속도를 높이고 있는 또 하나의 흐름이 있다. 겉으로 드러나는 결과는 앞서 언급한 현금 거래 비중의 감소라는 점에서 비슷하지만 그 맥락과 취지는 전혀 다르다. 바로 정부가 디지털 화폐를 발행하고 현금 사용을 아예 금지하자는 아이디어인데, 이른바 중앙은행 디지털 화폐(CBDC : Central Bank Digital Currency)’라는 개념이다.

용어도 생소하고 개념도 좀 어렵지만 그냥 학자들끼리 주고받는 선문답 같은 이야기라고 생각해선 안 된다. 생각보다 빨리 현실에 도입될 가능성이 높은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만약 이게 현실화되면 현금 거래가 많은 자영업자들의 경우엔 꽤 큰 변화를 맞게 될 것이다. 그래서 이 흐름을 잘 들여다봐야 한다.

CBDC는 말 그대로 중앙은행이 찍어내는 디지털 화폐다. 디지털 화폐는 그냥 신용카드 포인트 같은 거라고 생각하면 쉽다. 돈처럼 쓸 수 있고 그 본질도 진짜 돈인데 그 형태가 지폐나 동전이 아닌 숫자라는 것이다. 누구나 가상의 지갑이나 계정이 하나씩 있고 거기엔 나의 전 재산이 모두 포인트 형태의 디지털 화폐로 들어있으며 그 돈을 쓰려면 역시 모바일뱅킹을 하듯이 매번 이체를 해주는 방식이다. 물론 그 이체의 방법은 지금처럼 복잡하지는 않을 것이다. 휴대전화나 손목시계를 단말기에 슬쩍 갖다 대기만 해도 포인트가 빠져나가는 방식이 될 수도 있다.

이미 그런 것들은 세상에 여럿 존재하지 않느냐고 질문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CBDC는 그런 것도 있는 정도가 아니라 전 국민이 의무적으로 그것만 써야 하는 것이다. 그냥 현금도 쓰고 디지털 화폐도 쓰면 되지 않을까 싶지만 그렇지 않다. 현금을 없애야 이 디지털 화폐가 제대로 작동하기 때문이다.

경기를 살려내는 디지털 화폐의 마법

이쯤에서 왜 각국 정부가 디지털 화폐를 만들어서 보급하려고 하는지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첫째, 자칫하면 민간 기업이 만든 디지털 화폐가 그냥 자연스럽게 진짜 화폐가 될 가능성이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중국에선 민간 기업이 만든 위챗페이 또는 알리페이라는 디지털 화폐가 현금을 대체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쿠팡이라는 인터넷 쇼핑몰에서 쓸 수 있는 쿠페이, 네이버에서 쓸 수 있는 네이버페이 포인트를 수십 만원어치씩 충전해놓고 쓰는 소비자들이 늘고 있다.

정부가 만들어서 보급한 인민폐나 한국은행권이 아닌 알리페이나 쿠페이, 네이버페이에 소비자들이 익숙해지기 시작하면 동네 철물점이나 구멍가게에서도 네이버페이나 알리페이를 받는 단말기가 보급되기 시작할 것이다. 그리고 그쯤 되면 사람들은 월급도 네이버페이로 달라고 할지도 모른다. 월말이 되면 모든 회사들이 네이버에 가서 네이버페이를 사서 직원들의 계좌로 보내주는 것이다.

그런 네이버페이가 얼마나 발행되고 유통되는지는 네이버만 안다. 돈을 찍어낼 수 있는 기업이 되는 것이다. 네이버가 네이버페이를 더 많이 풀면 경기가 살아나고 물가가 오르고, 그 반대가 되면 경기가 위축되는 일이 생긴다. 각국 정부들은 이런 상황이 오는 것을 두려워하기 시작했고, 이는 CBDC가 논의되기 시작한 출발점이다.

정부가 디지털 화폐를 찍어내려고 하는 또 다른 이유는 디지털 화폐만이 할 수 있는 기가 막힌 장점이 있기 때문이다. 바로 경기를 살려내는 마법이다.

경기가 위축되면 중앙은행은 금리를 내리게 되는데 요즘 전 세계 주요 국가들의 기준금리는 대부분 제로다. 더 이상 금리를 내릴 수 없는 지경에까지 내려왔다는 것이다. 금리를 내려도 내려도 왜 경기가 살아나지 않는지에 대해 전문가들은 이렇게 설명한다.

어느 나라에나 하기만 하면 돈이 되는 사업이 있다. 예를 들면 A마을에서 B마을 사이에 도로를 건설하는 일이다. A마을과 B마을은 왕래가 잦아서 도로를 만들기만 하면 사람들이 통행료를 내고서라도 그 도로를 이용할 것이다. 사람들이 기꺼이 낼 수 있는 통행료를 1000원이라고 치고 연간 통행량을 1만 건이라고 가정하면 도로를 만들면 벌 수 있는 통행료는 연간 1000만원이다. 도로를 만드는 데 드는 비용이 1억 원이라면 사람들이 이 도로를 만들지 않을지는 오로지 시중 이자율에 따라 결정된다. 예를 들어 이자율이 20%라면 1억 원을 빌려서 도로를 만드는 일은 하지 않는데, 그 이유는 1억 원을 빌리면 내야 하는 이자가 연간 2000만원이나 되기 때문이다. 통행료로 1000만원을 벌어도 적자다. 그런데 이자율이 1%로 낮아지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1억 원을 빌려서 도로를 만들면 이자는 100만원만 내면 되는데 통행료 수입은 1000만원이다. 너도 나도 돈을 빌려서 도로를 만들려고 할 것이다.

그런데 이자율을 1%로 낮춰도 사람들이 도로를 만들지 않는다면 그건 무엇 때문일까. 이미 A마을과 B마을 사이에 도로가 있거나, 도로가 없어서 새로 만들더라도 사람들은 A마을과 B마을 사이를 그렇게 자주 오가지 않을 것 같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A마을과 B마을을 자주 왕래하지 않는 이유는 왕래해봐야 얻을 게 없기 때문이다. 예전엔 A마을에서 만든 곡괭이와 삽으로 B마을에서 만든 시멘트를 개어서 도로를 만들려고 서로 바쁘게 오갔지만 이제는 그럴 일이 없기 때문이다. 쉽게 말하면 웬만한 건 이미 다 있어서 더 이상 뭘 생산할 게 없기 때문인데, 이걸 경제학 용어로는 잠재 성장률이 떨어졌다고 표현한다.

현대 사회에서 각국 중앙은행들이 금리를 제로로 낮춰도 경기가 쉽게 살아나지 않는 이유도 마찬가지다. 매우 낮은 금리지만 그 금리로 돈을 빌리더라도 그 금리 이상으로 돈을 벌 수 있을 만한 게 도무지 없기 때문이다. 간혹 그런 돈벌이가 발견되긴 하지만 경제라는 건 그런 걸 용케 발견한 한두 명이 그런 일을 한다고 살아나는 건 아니다. 많은 사람들이 돈 되는 일을 발견하고 거기에 매달려서 열심히 뭔가를 생산해내고 그걸 소비해야 살아나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질문. 만약 금리가 제로가 아니라 마이너스 10%’라면 어떻게 될까. 예를 들어 A마을과 B마을 사이를 연결하는 도로는 이미 있으니 케이블카를 만드는 사업을 생각해보자. 도로도 있는데 케이블카를 굳이 이용하는 사람들은 적을 테니 1억 원을 들여서 케이블카를 만들더라도 수익은커녕 1년에 100만원의 적자가 난다고 가정해보자. 이런 상황에서는 1억 원이라는 돈을 무상으로 빌려준다는 제로금리라도 케이블카를 만드는 사람은 없다. 공짜로 1억 원을 빌려와도 100만원의 적자가 나니 내 돈 100만원을 손해봐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만약 이자율이 마이너스 10%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이자율이 마이너스 10%라는 건 1억 원을 빌려간 사람에게 오히려 이자를 1000만원 더 얹어준다는 뜻이다. 1억 원을 빌려가기만 하면 1000만원을 준다니 1억 원을 빌려서 케이블카를 만들어도 된다. 1년에 900만원을 버는 사업이 되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앞 다퉈 케이블카를 만들 것이고 경기는 쉽게 살아날 것이다.

그런데 이런 마이너스 이자율은 현실에선 불가능하다. 두 가지 이유 때문이다. 첫째, 마이너스 이자를 주는 예금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대출 이자율이 마이너스 10%라면 예금 이자율은 마이너스 10%보다 더 낮아야 한다. 이를테면 마이너스 15%쯤 돼야 한다. 1억 원을 맡긴 사람은 1년에 1500만원의 이자를 오히려 내야 하는 것이다. 그러면 은행은 그렇게 받은 1500만원 중에서 1000만원을 1억 원을 마이너스 10%의 이자로 대출받아가는 고객에게 얹어줄 수 있다. 그런데 예금 이자율이 마이너스 15%라면 누가 은행에 예금을 하겠는가. 다들 현금으로 찾아서 집에 보관할 것이다.

둘째, 사람들이 1억 원을 빌려서 케이블카를 안 만들고 그냥 그 돈을 집에 보관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1억 원을 대출받으면 오히려 이자로 1000만원을 주니 케이블카고 뭐고 안 만들고 그냥 그 돈을 서랍에 넣어두는 것이다. 케이블카를 만들면 100만원의 적자가 나니 그렇게 하는 게 연간 100만원 더 이익이다. 그러니 아무도 케이블카를 안 만들고 경기는 안 살아난다.

CBDC, 생각보다 빨리 도입될 가능성 높아

그렇다면 이 고민을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 CBDC가 필요한 건 바로 이 순간이다. 디지털 화폐는 마이너스 이자율을 현실에서 구현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 이유는 이렇다.

만약 모든 사람들이 디지털 화폐만을 사용한다면, 즉 아무도 현금을 사용하지 않는다면 어떤 사람이 얼마의 돈을 갖고 있는지를 1원 단위까지 정확히 알 수 있다. 아무개의 신용카드 포인트가 몇 포인트인지 정확히 알 수 있는 것과 같다. 그러면 어느 순간부터 정부가 마이너스 10%라는 기준금리를 발표하면 그날 1억 원을 갖고 있는 사람의 계좌는 1년 후에 정확히 9000만원이 된다. 모든 돈이 디지털 화폐이기 때문에 정부가 1년에 10%씩 삭제하라고 하면 그렇게 되기 때문이다. 신용카드 회사가 마음만 먹으면 아무개의 신용카드 포인트를 매년 절반으로 줄이는 게 얼마든지 가능한 것과 같은 이치다.

이렇게 되면 사람들은 정부가 오늘부터 기준금리는 마이너스 10%이고 예금금리는 마이너스 15%라고 발표하더라도 은행에서 돈을 찾아서 책상 서랍에 넣어둘 수 없게 된다. 모든 돈은 디지털 화폐이기 때문에 어떤 은행의 계좌이든 그 곳에 머무를 수밖에 없고 은행 계좌에 머무르는 돈은 정부가 적용하는 이자율에 따라서 늘어나거나 줄어들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선 케이블카를 만들겠다고 마이너스 금리로 대출을 받아놓고 그 돈을 그냥 서랍에 넣어두는 것도 불가능하다. 모든 돈은 항상 누군가의 계좌에 들어 있어야 하지 현금으로 찾아서 빼놓는 건 불가능하다.

이런 일이 가능하게 하려면 모든 화폐는 디지털 화폐이어야 하고 그 발행 주체는 정부여야 한다. CBDC가 고민되고 논의되는 핵심적인 이유다. 네이버페이나 알리페이는 디지털 화폐이긴 하지만 정부의 통제 하에 있지 않으므로 누가 얼마를 갖고 있는지 실시간으로 정부가 알기 어렵고 마이너스 이자율을 제대로 적용하는지도 확인하기 어렵다.

정부가 관리하는 디지털 화폐를 도입하고 현금을 없애야 하는 또 하나의 이유는 양극화와 고령화 때문이다. 양극화가 심해지면서 부유층에게 세금을 더 많이 걷을 수밖에 없게 되는데 그 정도가 강해지면 부유층들은 현금이나 금이나 그밖에 비밀이 보장되는 여러 형태의 자산으로 자신들의 부()를 저장하려고 노력하게 된다. 그런 시도를 무력화하는 방법으로 유일한 것은 디지털 화폐의 도입뿐이다. 아예 현금이 유통되지 않으니 파악되지 않는 자산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이런 이유들 때문에 정부가 주도하는 디지털 화폐, CBDC는 생각보다 빨리 도입될 가능성이 높다. 현금 없는 세상, 모든 거래가 투명하게 공개되는 세상이 우리의 생각보다 훨씬 빨리 올 가능성이 높다는 말이다. 그런 날이 좀 더 빨리 올 수밖에 없는 이유는 그런 세상이 오면 뭔가 편리해지기 때문이 아니라 그런 세상이 아니라면 우리의 고민을 해결할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이진우 경제 팟캐스트 신과 함께를 제작하는 이브로드캐스팅의 대표이자 MBC 라디오의 경제 프로그램 이진우의 손에 잡히는 경제진행자다. 이데일리와 서울경제신문에서 기자로 일했다. 대표 저서로 <거꾸로 읽는 경제학>, <친절한 경제상식>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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