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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과 사람/이진우의 외식&경제

우리가 ‘현대화폐이론’까지 알아야 되나?

월간 음식과 사람 2020. 12. 15. 15: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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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과 사람 2020.12 P.52 Marketing point_이진우의 ‘외식&경제’

인간이 하는 거의 모든 행위는 경제와 관련이 있다. 그만큼 경제는 우리 삶과 불가분의 관계다. 장기 불황으로 허덕이는 외식업 경영자 처지에선 더 나은 선택을 위한 경제 지식의 필요성이 더욱 절실할 수밖에 없다. 당장의 가게 일로 눈코 뜰 새 없더라도 잠시나마 경제와의 티타임을 가져보자. 경제를 알아야만 돈이 보인다.
editor 이진우 MBC 라디오 이진우의 손에 잡히는 경제진행자 photo shutterstock

많은 경제학자들이 정신 나간 이론이라고 비판

경제 전문가들은 별 것 아닌 개념도 굉장히 어려운 용어로 포장함으로써 대중의 접근을 차단하는 경향이 있다. 그건 의도적이라기보다는 굳이 친절하고 쉽게 풀어서 설명해야 할 필요를 느끼지 않는 데서 오는 결과일 수도 있겠으나 어쨌든 대중은 종종 불쾌하다.

요즘 그들 사이에서 뜨거운 논쟁이 벌어지고 있는 주제가 있는데, 용어부터 난해하기 짝이 없게 들리는 현대화폐이론(MMT: Modern Theory)이다. 용어 자체로는 그 내용에 대해 아무런 힌트도 주지 않는 불친절의 극치를 달리는 이 개념에 대해 굳이 우리가 관심을 기울여야 하는 이유는 이게 조만간 우리의 삶을 바꿀 수도 있는 내용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현대화폐이론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경기가 살아날 때까지 정부가 돈을 찍어서 국민들에게 나눠주자. 현대화폐이론에 등장하는 현대(Modern)’라는 표현은 과거에는 상상도 할 수 없었던 개념이기 때문에 사람들이 놀랄까봐 미리 넣어둔 수식어이기도 하다.

돈을 찍어서 나눠주는 건 과거에도 몇 번 해본 일이지만 매번 큰 부작용이 있었다. 우리나라에서도 흥선대원군이 경복궁을 새로 지으면서 건축비를 조달하기 위해 당백전이라는 화폐를 찍어서 인부들에게 월급을 줬는데 그 돈이 시중에 풀리면서 화폐가치가 추락하고 물가가 폭등해서 큰 고생을 한 적이 있다. 당백전은 그 표면에 당시의 화폐이던 상평통보의 100배의 가치가 있다고 표기되긴 했지만 실제로는 3~4배 가치에 시중에서 거래되다가 결국 정부가 다 사들여서 소각시켰다(사들일 때의 가격은 상평통보와 동일한 가치로 사들였다).

다른 예는 또 있다. 1차 세계대전 이후 패망한 독일의 경제를 살리기 위해 돈을 찍어서 시중에 공급했던 바이마르공화국의 정책으로 1달러가 4.2마르크와 교환되던 환율은 몇 년 만에 20억 마르크가 1달러와 교환되는 수준으로 폭등해버렸다. 정통 경제학자들의 시각에서 보면 세상 다시 못할 짓인 그 짓(?)을 또 해보자는 게 현대화폐이론이니 뜨거운 논쟁이 붙을 만도 하다.

현대화폐이론을 사전에서 찾아보면, 정부의 부채는 좀 더 많이 실제로는 무한대로 늘려도 괜찮다는 이론이라고 설명돼 있다. 그러니 정부 부채비율을 걱정하지 말고 계속 시중에서 돈을 빌려다가 쓰자는 것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정부 부채가 계속 늘어나면 정부에 돈을 안 빌려주려고 할 것이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돈을 계속 빌려 쓰려고 하면 이자를 더 많이 내라고 할 것이다. 예를 들어 정부가 돈을 빌려 쓰는데 연 5%를 내야 한다면 기업이나 개인이 돈을 빌려 쓰는 이자율은 그보다 훨씬 높을 것이다. 경기를 살리려고 하는 정책인데 시중 이자율을 높여버리면 오히려 부작용이 크다. 그래서 사람들이 정부에게 돈을 빌려주지 않으려고 하기 시작하면 결국 한국은행 같은 중앙은행이 돈을 찍어서 그 돈을 정부에게 빌려줄 수밖에 없을 것이다. 결국 한국은행이 돈을 찍어서 정부에게 빌려주는 게 현대화폐이론인데 그건 멀찌감치 떨어져서 보면 정부나 한국은행이나 그게 그거니 그냥 정부가 돈을 찍어서 쓰는 것과 다를 바 없다.

많은 경제학자들이 이 이론을 정신 나간 이론이라고 비판하고 있다. 얼마 전 미국 시카고대학에서 주요 경제학자들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한 적이 있는데 88%가 이 이론에 반대한다는 응답을 했다. 그러나 이 현대화폐이론을 지지하는 전문가들도 적지 않다. 이들의 반론도 기꺼이 들어볼 만하다. 의외로 재미있기 때문이다.

돈을 적당히만 찍어서 쓰면 아무 문제가 없다?

현대화폐이론 지지자들은 대원군의 당백전 사건이나 독일 바이마르공화국의 하이퍼인플레이션 사건에 대해 돈을 찍어서 쓴 게 잘못이 아니라 돈을 너무 한꺼번에 많이 찍어서 쓴 탓이라고 규정한다. 쉽게 말하면 돈을 찍어서 쓰되 살살 찍어서 쓰면 괜찮다는 이야기다. 어느 정도로 살살이냐고 물으면 물가가 많이 오르지 않을 때까지라고 답한다.

이 반론이 어느 정도 이해가 되는 것은 그게 가능했던 사례가 있기 때문이다. 바로 일본이다. 사실 일본에 대해 말하자면 일본은 이미 이 현대화폐이론을 실제로 적용해서 쓰고 있다. 이렇게 말하면 조금 놀랄 수도 있을 것 같은데 진짜다.

아무도 일본이 하고 있는 정책을 현대화폐이론에 근거한, 돈을 무제한으로 찍어서 쓰는 정책이라고 노골적으로 표현하지는 않지만 일본이 하고 있는 정책을 들여다보면 현대화폐이론이 주장하는 것과 하나도 다르지 않다.

일본은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부채비율이 237%. 웬만한 나라들의 부채비율이 100% 이하인 것을 감안하면 매우 특이한 현상이다. 그런데 일본 정부가 빌린 이 어마어마한 부채의 40% 이상은 일본 중앙은행이 빌려준 돈이다. 일본 중앙은행은 어디서 돈이 나서 일본 정부에게 빌려줬을까. 당연히 돈을 찍어서 빌려줬다. 쉽게 말하면 일본 정부는 세금을 걷어서 돈을 쓰고 모자라는 돈의 절반가량은 그냥 돈을 찍어서 쓰고 있다는 뜻이다. 이게 현대화폐이론과 뭐가 다른가.

일본만 그런 게 아니라 미국과 유럽도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다 비슷한 일을 하고 있다. 유럽도 전체 정부부채의 45%가량을 유럽중앙은행에서 빌려왔고 미국도 미국 정부부채의 약 20% 정도는 미국 중앙은행이 빌려준 돈이다. 그런데 미국이나 유럽이나 일본이나 물가가 많이 올라서 걱정이라는 말은 나오지 않고 있다. 그러니 돈을 찍어서 써도 그 정도를 벗어나지 않으면 물가는 오르지 않는다는 게 현대화폐이론의 주장이다.

여기서 한 가지 궁금한 점은 왜 과거에는 돈을 찍어서 쓰면 물가가 폭등하고 난리가 났는데 요즘은 돈을 찍어서 쓰는데도 물가가 오르지 않을까. 왜 물가가 안 오르는지를 알아야 앞으로도 계속 안 오를지 아니면 이제 곧 오를지 알게 될 테니 이건 아주 중요한 질문이다.

이 질문에 대해 지금까지 나온 답은 두 가지다. 첫째, 다행히도 돈을 적당히 찍어서 쓰고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정부가 돈을 찍어서 풀고 그 돈이 사람들의 주머니로 들어가서 사람들은 그동안 비싸서 못 사먹던 만두를 사먹기 시작한다고 가정해보자.

만두가게 사장은 손님들이 조금씩 늘어나면 직원을 더 고용하고 설비를 늘려서 만두의 공급도 늘린다. 그러면 만두 재료인 밀과 돼지고기의 공급도 늘어난다. 농민들은 밀농사를 더 하기 시작하고 돼지를 더 기르기 시작한다. 그러니 만두 수요가 늘어난다고 만두 가격이 폭등하지는 않는다. 만두의 공급도 같이 늘어나기 때문이다.

즉 돈을 찍어서 쓰더라도 물가가 오르지 않는 비밀은 시중에 상품을 공급하는 공급자들이 그 돈을 벌기 위해 생산을 더 하기 때문이다. 이게 경제성장이고 경제발전이다. 돈을 찍어서라도 시중에 풀자고 주장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고 돈을 적당히만 찍어서 쓰면 아무 문제가 없다고 주장하는 근거도 여기에 있다.

그런데 이런 이유로 물가가 오르지 않는다면 다소 불안한 점은 남는다. 돈을 찍어서 쓰다보면 물가가 언제부터 오르기 시작할지 모른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독일 바이마르공화국이 돈을 찍어서 쓸 때도 처음에는 별 반응이 없다가 어느 날 갑자기 물가가 폭등하기 시작했다.

배척할 것인가, 받아들일 것인가

어느 순간부터 사람들은 이렇게 돈이 많이 풀리면 돈의 가치가 떨어질 게 뻔하다고 생각해서 당장 필요하지 않은 것이라도 뭐든지 사들이기 시작하고, 그리고 그렇게 물가가 폭등하기 시작하면 정부는 그걸 막을 힘이 없다. 만두가게 사장도 사람들이 만두를 많이 사먹는 정도가 아니라 내년에 먹을 만두까지 사재기를 시작하면 만두를 계속 공급할 재간도 없고 그럴 이유도 없다. 내년에 먹을 만두를 사재기하는데 밀농사를 늘리고 돼지를 더 키우면 내년에는 공급과잉이 될 게 뻔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정통 경제학자들 입장에서 보면 현대화폐이론은 산에서 모닥불을 피우더라도 산불이 안날 정도로만 피우면 괜찮다는 주장으로 들린다. 누구나 그런 마음으로 산에서 불을 피운다. 그러다 잘못해서 불이 번지면 누가 책임지느냐는 게 현대화폐이론에 반대하는 이들의 주장이다.

돈을 찍어서 쓰더라도 물가가 오르지 않는 두 번째 이유는 좀 다르다. 그리고 이 설명은 물가가 안 오르기는커녕 이미 폭등하고 있다는 주장으로 시작된다. 물가를 측정하는 대상에 집값이나 주식 가격, 금값 등을 포함하지 않아서 그렇지 부동산이나 주식, , , 심지어 비트코인까지 계속 오르고 있는데 이건 물가 상승이 아니고 뭐냐는 거다.

돈을 찍어서 푸는데 만두 가격은 안 오르고 주식이나 부동산만 오른다는 것인데 그 이유는 현대 경제의 구조적인 문제 때문이다. 풀린 돈이 부자들의 주머니로 흘러가서 나오지 않기 때문이다. 예를 하나 들어보자.

과거에는 만두를 개인들이 가게를 열고 만들어 팔았다. 돈을 찍어서 풀면 사람들이 만두를 사먹고 만두가게 주인은 그걸로 옷을 사고 옷가게 주인은 그렇게 번 돈으로 자동차를 사고 자동차 공장 주인은 다시 만두를 사먹으러 갔다.

그런데 현대 경제는 다르다. 만두든 옷이든 자동차든 대기업이 만들어 판다. 생각해보면 그건 경제발전의 결과이고 매우 긍정적인 변화다. 그래서 100년 전보다 만두가 신선하고 싸고 맛있고 옷도 저렴하고 예쁘며 자동차도 100년 전의 자동차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가성비가 뛰어나다. 그런데 문제는 과거의 순환이 잘 나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과거에는 시중에 돈이 풀리면 만두가게 주인들이 돈을 벌어서 옷을 샀는데 지금은 만두회사 주주들이 만두가 잘 팔린다고 옷을 더 사지 않는다. 그들은 부자들이라 이미 옷은 많다. 그냥 그들의 통장에 잔고가 늘어나고 끝이다. 과거의 만두가게 주인들은 돈을 벌면 옷을 샀는데 지금 만두회사 주주들은 돈을 벌면 부동산이나 주식에 투자하거나 아주 고급스러운 상품을 구입한다. 수많은 정책들이 쏟아지지만 부동산값, 주식 값만 오르고 명품 회사 실적만 늘어나는 건 그런 이유 때문이다. 물론 세상의 일이란 칼로 무 자르듯 할 수 있는 건 아니라서 경제가 좋아지면 라면 회사 실적도 좋아지고 길거리 노점상의 매출도 늘어나긴 한다. 그러나 돈을 풀어서 공급하는 만큼 그 효과가 크지 않고, 그보다 또는 그에 앞서서 자산 가격의 상승이 더 먼저 더 많이 나타난다.

돈을 풀어도 물가가 잘 오르지 않는 두 번째 이유는 결국 요약하면 현대 경제 시스템의 구조적인 문제 때문인데 이건 돈을 풀어도 효과보다는 부작용이 크니 돈을 풀지 말자는 주장과도 연결된다. 돈을 안 풀면 서민들이 어렵고 풀면 부자들이 더 혜택을 보는 아이러니는 경제 주체들의 돈 버는 능력의 격차가 과거 어느 때보다 커졌기 때문이다. 과거에는 가내수공업으로 만든 제품들이 잘 팔렸지만 사람들의 눈높이가 높아져서 이제는 좋은 스마트폰을 만들어야 겨우 팔리는데 스마트폰은 개인이 만들 수도 없고 중소기업이 만들 수도 없다. 돈은 결국 애플과 삼성전자, 화웨이의 금고로 들어가게 되는데 그들은 버는 돈을 다 쓸 방법이 없다.

삼성전자와 애플은 300조원이 넘는 현금성 자산을 보유하고 있는데 그 돈이 어디서 나왔을까 생각해보면 결국은 중앙은행이 돈을 찍어서 시중에 풀어댄 바로 그 돈이다. 그들이 가진 돈이 시중에 풀려나와야 하는데 나쁜 방법으로 번 돈이 아니니 강제로 빼앗을 수도 없고 그 회사에 다니는 직원들만 월급을 10배로 주기도 어렵다. 그건 불공평하기 때문이다. 세금을 더 많이 걷기도 어렵다. 본사를 세율이 낮은 다른 나라로 옮기는 것도 맘에 걸리지만, 300조원의 현금성 자산 덕분에 넉넉한 연구개발 투자도 하고 그 덕분에 새로운 휴대전화가 팔려서 부품회사도 휴대전화 대리점도 먹고 사는 것이니 함부로 세금을 올리기도 어렵다.

돈을 풀어서 경기를 살리되 그로 인해 커지는 빈부 격차는 받아들이는 것. 아니면 그냥 다함께 가난해지는 것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게 우리의 상황이다. 현대화폐이론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별 대안이 없고 받아들이더라도 여전한 숙제는 남는다. 세상 일 참 간단치 않다.

이진우 경제 팟캐스트 신과 함께를 제작하는 이브로드캐스팅의 대표이자 MBC 라디오의 경제 프로그램 이진우의 손에 잡히는 경제진행자다. 이데일리와 서울경제신문에서 기자로 일했다. 대표 저서로 <거꾸로 읽는 경제학>, <친절한 경제상식>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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