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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과 사람/이진우의 외식&경제

계약갱신청구권에 대해 알아둬야 할 것들

월간 음식과 사람 2020. 11. 6. 15: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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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과 사람 2020.11 P.52 Marketing point_이진우의 ‘외식&경제’

인간이 하는 거의 모든 행위는 경제와 관련이 있다. 그만큼 경제는 우리 삶과 불가분의 관계다. 장기 불황으로 허덕이는 외식업 경영자 처지에선 더 나은 선택을 위한 경제 지식의 필요성이 더욱 절실할 수밖에 없다. 당장의 가게 일로 눈코 뜰 새 없더라도 잠시나마 경제와의 티타임을 가져보자. 경제를 알아야만 돈이 보인다.
editor 이진우 MBC 라디오 이진우의 손에 잡히는 경제진행자 photo shutterstock

계약갱신청구권 행사의 적기는?

지난 8월부터 도입된 계약갱신청구권은 몇 가지 민감하지만 중요한 부분을 정확히 알아둬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큰 손실을 입을 수도 있다. 왜냐하면 새로 도입된 제도라 생소하기도 하지만 그 운영방식이 국민들의 일반적인 상식과는 좀 다르게 적용되는 경우가 꽤 있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경우가 집을 팔았는데 그 집을 새로 산 주인이 직접 입주하려고 해도 기존 세입자가 2년을 더 거주하겠다고 계약갱신청구권을 행사하면 그 집에 입주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이건 세입자의 계약갱신청구권보다 앞서는 예외적 권리로 집주인(직계 존비속 포함)이 직접 입주하려는 경우만을 정해놓은 법규 때문이다.

그렇다면 새로 집을 산 집주인이 기존 세입자를 내보내고 잔금을 치르는 동시에 그 집에 입주할 방법은 없을까. 이런 경우에는 가능하다. 이건 세입자도 잘 알아둬야 그런 상황에 제대로 대응할 수 있다.

새로 집을 산 집주인이 기존 세입자를 바로 내보낼 수 있는 거의 유일한 방법은 세입자 몰래 집을 사고파는 것이다. 세입자는 계약만기 시점 기준으로 1~6개월 사이에 계약갱신청구권을 행사할 수 있다. 세입자가 계약갱신청구권을 행사하면 그 순간의 집주인(새 집주인이 아닌 옛 집주인)이 직접 들어와서 사는 경우가 아니면 그 세입자를 내보낼 방법은 없다. 그러니 세입자는 계약만기 6개월이 되는 순간 집주인에게 바로 계약갱신청구권을 행사하는 게 좋다.

그러나 집주인이 부당한 전세금 인상을 요구하거나 굳이 나가라고 하지 않으면 세입자 입장에서는 그냥 가만히 있다가 조용히 넘어가는 게 제일 유리하기 때문에(왜 그게 유리한지는 뒤에 설명드리겠다) 먼저 계약갱신청구권을 행사할 이유가 없다. 그래서 세입자들은 대개 집주인들이 먼저 연락하기 전에는 가만히 있는 경우가 많다.

그러니 매도자(현재 집주인)와 매수인(새 집주인)은 세입자 모르게 굳이 집을 보지 말고 바로 계약하고 잔금도 치르는 것이다. 세입자 모르게 새로 주인이 된 매수자가 세입자에게 본인의 직접 거주를 사유로 집을 비워달라고 하면 새 집주인이 바로 입주할 수 있다.

이 상황의 유일한 변수는 매매 계약을 치르고 잔금을 주고받기 전에 세입자가 계약갱신청구권을 행사하는 것이다. 그러면 아직 집주인이 바뀌지 않은 상태라서 새 집주인은 기존 세입자를 내보낼 권리가 없다. 매수자와 매도자는 계약서의 특약조항을 통해 이런 상황이 발생하면 위약금 없이 계약을 해지한다고 단서조항을 달아두면 될 것이다.

결국 새 집주인은 집을 보지 않고 매수하는 위험, 그리고 계약금을 낸 후 잔금 전에 기존 세입자가 계약갱신청구를 하게 되는 위험을 떠안으면 된다. 세입자가 이런 상황을 당하지 않으려면 세입자는 계약 만기 전 6개월이 되자마자 바로 계약갱신청구권을 행사해야 한다.

집주인과 세입자의 두뇌 싸움

정부가 앞으로는 매매계약을 체결할 때 공인중개사가 세입자에게 계속 거주 또는 계약 종료 여부를 확인하도록 하는 이른바 홍남기 방지법을 만들 계획이지만, 집을 어떻게든 팔려고 하는 매도자와 어떻게든 사서 바로 입주하려는 매수자는 그런 확인과정 없이 직거래를 통해 세입자 몰래 집을 거래하려고 시도할 것이다. 공인중개사는 이럴 경우 세입자 확인을 하지 말자는 양측의 요구를 들어줄 수도 없고 안 들어줄 수도 없는 난감한 상황을 맞이하게 될 것이다.

계약갱신청구권에 대해 꼭 알아둬야 할 것은 세입자가 그 권리를 명시적으로 행사하지 않으면 계약갱신청구권은 사라지지 않고 세입자가 보관하고 있다가 다시 사용할 수 있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2년간 거주한 세입자가 재계약을 하고 2년을 더 거주하게 될 때 계약을 갱신하는 과정에서 계약갱신청구권을 행사하면 2년만 더 살고 나와야 하지만 계약갱신청구권을 행사하지 않고 재계약이 됐다면 그 세입자의 계약갱신청구권은 여전히 유효하다. 그러니 4년을 살고 또 계약갱신청구권을 행사해서 2년을 더 살 수 있다.

그렇다면 계약갱신청구권을 행사하지 않고 재계약이 되는그런 상황은, 세입자에게 있어서 더없이 유리한 그런 상황은 어떤 경우일까.

첫째는 집주인과 세입자가 아무 말 없이 갱신기간을 지나치는 묵시적 갱신의 경우다. 세입자도 아무 말 없고 집주인도 아무 말 없이 계약만료 한 달이 남은 시점을 그냥 지나치는 것이다. 그러면 자동으로 종전의 계약 내용대로 2년간 재계약이 되는데 이때는 계약갱신청구권을 행사하지 않은 것으로 간주한다.

세입자 입장에서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상황이다. 이렇게 되면 계약갱신청구권은 여전히 갖고 있으면서 중간에 전세금을 전혀 올리지 않고 2년을 더 거주할 수 있으며 세입자가 중간에 나가고 싶으면 3개월 전에 집주인에게 통보만 하면 아무 비용 없이 계약을 종료하고 나갈 수 있다.

세입자들이 계약갱신청구권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걸 굳이 먼저 나서서 스스로 사용하려고 하지 않는 이유는 이렇게 가만히 있다가 재계약 기간을 조용히 넘기면 세입자에겐 가장 아름다운 상황이 펼쳐지기 때문이다.

둘째는 집주인과 세입자가 원만한 합의를 통해 재계약을 하는 것이다. 계약갱신청구권은 집주인의 부당한 요구를 거부하고세입자가 집주인에 대해 저항하면서 2년간 추가로 거주할 수 있는 권리이므로 그런 거부나 저항 없이 양측이 원만하게 합의해서 재계약을 하면 계약갱신청구권은 사용되지 않은 것으로 간주한다.

세입자 입장에서는 묵시적 갱신 다음으로 행복한 상황이고 집주인 입장에서는 묵시적 갱신 다음으로 위험한 상황이다. 그래서 세입자는 집주인이 먼저 연락을 해올 때까지 조용히 있는 것이다. 집주인의 요구를 들어보고 판단하면 되기 때문이다.

세입자에게 매우 유리한 이런 상황을 맞이하기 위해서 세입자가 해야 할 일은 집주인에게 먼저 연락하지 않고 그냥 기다린다는 요령이다(그래서 가끔은 집주인이 세입자 몰래 집을 파는, 세입자 입장에서는 위험한 상황을 겪게 되는 것이다).

반대로 집주인은 이런 상황을 피해야 한다. 세입자가 스스로의 권리를 찾아서 4년간 거주하는 것은 집주인도 받아들여야 하지만 계약갱신청구권을 사용하지 않고 넘어가는 바람에 6년을 거주하는 경우는 피해야 하기 때문이다.

임대차 관련법의 맹점 보완해야

그럼 어떻게 해야 세입자가 계약갱신청구권을 사용하게 할 수 있을까. 사실 이 방법이 참 모호하다. 계약갱신청구권 제도의 가장 큰 구멍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집주인은 세입자에게 억지로 황당한 요구를 해야 한다. 예를 들면 현재 전세금이 4억 원이라면 전세금 10억 원을 요구하는 것이다. 세입자는 기분이 나쁘고 황당하겠지만 그럼 계약갱신청구권을 사용하겠다고 하면서 법에서 정한 5% 미만의 인상률을 요구할 것이다. 집주인은 그제야 못이기는 척 42000만 원 이하의 전세금을 제시하고 세입자와 재계약을 하면 된다. 그리고 새로 쓰는 계약서에 이 계약은 세입자 ◯◯◯의 계약갱신청구권 행사에 따라 이뤄진 계약이다라고 명시해두면 된다.

전세계약을 연장할 때는 별도의 새 계약서를 안 써도 되는 게 그동안의 관행이었지만 이제 앞으로 집주인은 새로운 계약서를 꼭 쓰고 거기에는 반드시 세입자가 계약갱신청구권 행사를 했다는 사실을 명시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2년 후에(세입자가 4년을 거주한 후에) 세입자가 다시 남아있는 계약갱신청구권을 사용하겠다고 주장하는 상황을 맞이할 수도 있게 된다.

사실 전세금 10억 원을 요구할 경우 세입자와 집주인의 원만하던 관계는 상처를 입을 수밖에 없다. 그러나 원만하게 합의하면 안 되는 게 집주인의 상황이므로 어쩔 수 없다. 세입자에게 받아들이기 어려운 요구를 하고 세입자는 거기에 반발해서 계약갱신청구권을 사용하게 하는 것은 집주인들에겐 결코 생략해서는 안 되는 과정이다.

그냥 조용히 서로 합의하면서 집주인이 전세금은 5%만 올리고 재계약하시되 계약갱신청구권은 사용한 것으로 하자고 하고 계약서에 그 내용을 넣더라도 그건 엄밀히 말하면 세입자의 자발적인 계약갱신청구권 행사가 아니므로 2년 후 세입자가 말을 바꿀 경우 집주인은 난처한 상황이 된다. 세입자가 계약갱신청구권 행사를 하지 않았다고 주장하면서 집주인이 그런 상황을 강요했을 뿐 본인은 계약갱신청구권을 행사한 바 없고 그 증거는 세입자 본인이 집주인의 첫 번째 요구를 그대로 받아들였다는 사실이다라고 주장하면 그 세입자의 주장을 뒤엎을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원래 세입자에게 불리한 위법한 조항은 집주인과 세입자의 계약서에 포함했더라도 세입자가 그 계약을 지킬 의무가 없다. 예를 들어 2년간 거주가 보장된 임대차 보호법을 위반하고 세입자와 집주인 사이에 ‘1년만 거주하기로 한다는 계약을 하더라도 1년 후에 세입자가 그 계약을 무시하고 1년 더 거주하겠다고 해도 집주인은 대항할 수 없다.

정리해보면 세입자는 집주인이 연락을 해오기 전에는 가만히 있는 게 요령이다. 그러면 묵시적 갱신 또는 합의갱신이 가능하다. 단 이 경우 집주인이 세입자 몰래 집을 팔 가능성도 있다. 집주인은 집을 팔려면 세입자 몰래 파는 것이 요령이고 세입자를 4년만 머무르게 하려면 세입자에게 반드시 무리한 요구를 해서 계약갱신청구권을 사용하도록 해야 한다. 그냥 5% 정도 전세금을 올리고 재계약을 하면 2년만 더 살고 집을 비워주겠지 하는 생각은 집주인의 희망사항일 뿐이다.

이런 일이 벌어진 이유는 새로 임대차 관련법을 만들면서 새로 집주인이 된 사람의 직접 거주 권한을 보장하지 않은 것, 그리고 계약갱신청구권을 행사하지 않으면 그 권리를 보관했다가 2년 후에 한 번 더 사용하도록 허용한 것 때문이다. 새로 집주인이 되는 사람이 직접 거주하더라도 세입자는 집을 비워주도록 하거나, 아니면 차라리 세입자는 무조건 4년은 거주할 수 있다고 법을 바꾸는 게 합리적이다.

계약갱신청구권도 마찬가지다. 5% 이내의 임차료 인상으로 재계약을 한 경우는 세입자가 계약갱신청구권을 사용한 것으로 간주하는 게 혼란을 없애는 방법이다. 계약갱신청구권을 행사하도록 하기 위해 집주인과 세입자가 이상한 연극을 해야 하는 건 어떻게 생각해도 우습다.

어쨌든 법은 그렇게 만들어졌으니 우리는 그 법을 잘 알고 피해를 입지 않도록 행동하는 수밖에 없다. 집주인은 몰래 집을 팔거나 세입자에게 부당한 요구를 반드시 할 것, 세입자는 집주인에게 먼저 연락을 하지 말고 기다리거나 아니면 집주인이 집을 팔려고 하는 것 같으면(동네 부동산에 그 집이 매물로 나왔는지 확인해야 한다) 계약만료 6개월이 되는 순간 계약갱신청구권을 행사할 것, 그게 지금까지는 가장 유용한 요령이다.

 

이진우 경제 팟캐스트 신과 함께를 제작하는 이브로드캐스팅의 대표이자 MBC 라디오의 경제 프로그램 이진우의 손에 잡히는 경제진행자다. 이데일리와 서울경제신문에서 기자로 일했다. 대표 저서로 <거꾸로 읽는 경제학>, <친절한 경제상식>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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