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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과 사람/이진우의 외식&경제

글로벌 IT기업들은 왜 아일랜드를 좋아할까?

월간 음식과 사람 2020. 8. 6. 1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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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과 사람 2020.08 P.62] Marketing point_이진우의 외식&경제
인간이 하는 거의 모든 행위는 경제와 관련이 있다. 그만큼 경제는 우리 삶과 불가분의 관계다. 장기 불황으로 허덕이는 외식업 경영자 처지에선 더 나은 선택을 위한 경제 지식의 필요성이 더욱 절실할 수밖에 없다. 당장의 가게 일로 눈코 뜰 새 없더라도 잠시나마 경제와의 티타임을 가져보자. 경제를 알아야만 돈이 보인다.
editor 이진우 MBC 라디오 이진우의 손에 잡히는 경제진행자 photo shutterstock

사람들의 직업 중에는 불법은 아니지만 사람들에게 손가락질받기 쉬운 직업들이 있다. 예를 들면 술을 파는 가게를 한다거나 아이들이 좋아하는 게임을 개발하는 회사를 경영한다거나 하는 경우다. 아이가 게임에 너무 몰입하거나 또는 가족 중에 누군가가 알코올 중독에 걸린다면 사람들은 그런 사업을 하는 사람들을 비난하게 된다.

그러나 그들도 할 말이 있다. 그들에게 왜 의사나 청소부처럼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는 일을 하지 않느냐고 묻는다면 그들은 환경과 조건이 다르지 않느냐. 나는 의사가 될 만큼 공부를 많이 할 조건도 아니고 청소부의 급여로는 생활이 충분하지 않아서 다른 돈벌이가 꼭 필요한 환경이라서 그렇다고 항의할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사람들이 싫어하는 직업 중에서 해도 되는 직업과 해서는 안 되는 직업을 법으로 구분해놓고 불법적인 일을 하는 것을 규제하고 처벌한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마약 거래나 인신매매도 먹고살기 위해 불가피하게 선택한 생계의 수단이라고 항변할 것이고, 그걸 규제할 만한 마땅한 기준이 없으면 불법 행위가 난무할 것이기 때문이다. 사실 게임 중독과 마약 중독은 중독된 사람의 입장에서 보면 뭐가 더 낫거나 덜하다고 할 만한 차이가 없다.

갑자기 직업 이야기를 꺼낸 이유는 요즘 세계 여러 나라들 사이에서도 비슷한 일이 벌어지고 있어서다. 얼마 전에 휴대폰 제조사 애플이 유럽연합(EU)으로부터 18조 원 규모의 세금을 부과받을 뻔하다가 소송에서 이겨서 세금을 내지 않아도 되게 됐다는 뉴스가 있었는데, 이게 사실은 우리 주변의 직업들과 관련이 있는 이야기다. 그래서 그 이야기를 좀 해드릴까 한다.

세금을 적게 낼 수만 있다면…

이 이야기를 이해하려면 애플이 왜 EU18조 원이나 되는 세금을 낼 뻔했는지부터 알아야 되는데 그 사연은 이렇다. 애플은 전 세계 모든 나라에서 비즈니스를 하는데 애플이 파는 휴대폰과 소프트웨어는 애플 본사가 만들고, 각국의 지사들은 그 상품을 그 나라 국민들에게 파는 일을 한다. 예를 들어 100만 원에 파는 제품을 애플 본사가 프랑스 지사에 90만 원에 주면 프랑스 지사는 한 개를 팔 때 10만 원을 벌게 되고, 애플 본사가 50만 원에 주면 프랑스 지사는 50만 원을 벌게 된다. 그럼 애플 본사는 프랑스 지사에 보내는 제품 가격을 얼마로 정해야 할까.

정답은 애플이 세금을 가장 적게 낼 수 있는 가격이다. 예를 들어 프랑스에서 번 돈에 매겨지는 세금(법인세)이 프랑스가 매우 높다면 프랑스 지사에는 이익을 거의 내지 않을 수준으로 아주 비싸게 보내면 되고, 반대로 프랑스의 세금이 매우 낮다면 개당 1만 원에 주고 99만 원의 이익을 프랑스 지사가 가져가도록 하면 된다. 어차피 내야 할 세금이라면 세금을 낮게 매기는 나라에서 내고 끝내겠다는 게 애플의 절세 전략이다.

이런 고민은 애플뿐 아니라 페이스북, 구글 등 글로벌 IT기업들은 어디나 하는 고민이다. 그래서 그런 기업들은 전 세계에서 사업을 하면서 어떻게 하면 세금을 제일 적게 낼 수 있는지 고민을 하는데 그런 고민 끝에 찾아낸 방법이 바로 아일랜드에 회사를 세우는 방법이다.

좀 복잡하지만 세금이 어떻게 아껴지는지를 자세히 설명해보자면 이렇다. 우선 세금이 없는 조세회피지역인 버뮤다나 버진아일랜드에 임원을 몇 명 파견해서 사무실을 차리게 하고 거기서 아일랜드에 애플의 자회사인 애플 아일랜드를 설립하게 한다.

이 애플 아일랜드는 앞으로 전 세계에서 애플이 벌어들이는 돈이 모두 모이게 될 회사다. 애플 본사는 이 애플 아일랜드에 미국을 제외한 전 세계 영업권과 애플의 핵심적인 지적재산권을 모두 넘긴다.

물론 공짜로 넘긴 건 아니지만 애플이 전 세계에서 벌어들일 수익에 비하면 아주 싼 가격이다. 애플 아일랜드는 이렇게 확보한 지적재산권을 활용해 전 세계에 애플의 상품과 서비스를 제공하는 여러 지사들로부터 거액의 로열티를 받는다. 이렇게 받은 로열티에 대해서는 법인세를 내는 게 원칙이지만, 애플 아일랜드는 버뮤다에서 모든 업무를 총괄하므로 아일랜드 세법에서는 외국인(비거주자)으로 간주되고 법인세도 버뮤다에 내도록 돼 있다.

하지만 버뮤다는 법인세율이 0%이니 결국 세금을 한 푼도 안 내는 구조가 된다. 만약 아일랜드에 자회사를 세우지 않고 미국의 애플 본사가 전 세계 지사들로부터 로열티를 받았다면 미국의 법인세율을 적용받아 많은 세금을 냈을 것이다. 과거에는 미국 법인세율이 지금보다 훨씬 높아서 매우 높은 세금을 냈어야 했을 것이다.

좀 더 간단하게 하려면 그냥 버뮤다에 자회사를 세우고 거기로 모든 로열티 수익을 집결시켜도 가능하긴 하지만 미국에는 조세피난처를 그런 식으로 악용하는 기업들에 대한 대응 세법이 있어서 조세피난처의 자회사가 단순히 본사의 로열티 수수를 대행만 하는 경우는 그 수익이 사실상 미국 본사의 수익으로 보고 법인세를 부과한다. 그래서 번거롭지만 아일랜드에 자회사를 만든 것이다.

글로벌 IT기업과 아일랜드의 공생관계

세법이 궁금한 독자를 위해 한 가지 더 설명하자면 사실은 애플은 아일랜드에 별도의 자회사를 세워 그곳에서 로열티를 받는다. 그런데 이 아일랜드 자회사2가 벌어들이는 로열티를 애플 아일랜드로 보낼 때는 문제가 하나 남는다. 아일랜드 세법에 외국인(버뮤다에 근거지를 둔 애플 아일랜드)에게 로열티를 송금할 때는 20%의 원천세율로 세금을 떼고 나서 남는 돈만 보내게 돼 있다. 그 세금이 아까운 애플은 다시 머리를 써서 네덜란드에 페이퍼 컴퍼니를 하나 세우고 로열티를 일단 거기로 보냈다가 네덜란드 페이퍼 컴퍼니가 애플 아일랜드로 송금하게 한다. 아일랜드와 네덜란드는 조세협약을 맺은 관계여서 네덜란드에 있는 자회사에서 송금받은 로열티는 원천징수를 하지 않는다는 규정을 악용한 것이다. 이건 네덜란드가 유럽 역내의 거래를 활성화하자는 차원에서 만든 조항이지만, 애플은 세법의 구멍으로 활용한 것이다.

결국 요약하자면 아일랜드의 자회사2가 전 세계로부터 벌어들인 로열티를 네덜란드 페이퍼 컴퍼니를 거쳐 애플 아일랜드가 받게 되는데, 애플 아일랜드는 버뮤다 거주자로 인정돼 세금을 내지 않게 되는 구조다. 애플과 구글, 페이스북, 스타벅스, 아마존 등도 이와 똑같은 구조를 활용한다.

애플을 비롯한 주요 글로벌 IT기업들의 이런 탈세에 가까운 절세 방식은 전 세계 모든 나라들로부터 비난을 받는다. 돈은 자기 나라에서 벌어가고 세금은 잘 안 내는 기업을 좋게 볼 나라는 없을 것이다. 그런데 애플을 비난할 순 있지만 그런 절세 방식을 막을 방법이 없다는 게 문제다. 아일랜드라는 나라가 세법을 그렇게 만들어놨고, 애플이 그걸 합법적으로 활용하고 있을 뿐이기 때문이다.

유럽의 여러 나라들은 아일랜드 정부에 대해 애플, 구글, 페이스북 등 주요 IT기업들이 악용하고 있는 아일랜드의 세법을 고치라고 요구하지만 아일랜드 정부의 입장은 분명하다. 왜 남의 나라 세법에 간섭을 하느냐는 것이다.

그렇다면 아일랜드 정부는 애플이 그런 식으로 세금을 절세하는 과정에서 어떤 것을 얻게 될까. 어떤 이익이 있기에 이런 구조를 묵인하는 것일까. 당연히 애플로부터 얻는 게 있기 때문이다.

애플 아일랜드는 아일랜드에 또 다른 자회사2를 설립해서 수천 명의 직원을 고용하고 전 세계 영업과 로열티 수수를 실제로 담당하게 한다. 이 아일랜드 자회사2가 벌어들이는 수익의 대부분은 다시 애플 아일랜드로 대부분 이동하지만 그 과정에서 수많은 고용이 창출되고 약간의 이익에 대한 법인세도 낸다.

사실 애플은 이 이익도 모두 애플 아일랜드로 다 가져갈 수 있지만 그렇게 되면 아일랜드 정부도 얻는 게 별로 없어서 이 세법을 바꿀 수도 있으니 아일랜드 정부를 달래기 위해 약간의 이익을 남겨놓는 것이다.

우리나라를 포함한 세계 여러 나라들 입장에서 아일랜드는 마치 술이나 게임을 파는 회사와 비슷하다. 술을 팔지 않고 게임을 만들지 않으면 알코올 중독에 걸리거나 게임을 하느라 다른 일을 하지 못하는 문제가 애초부터 없었을 텐데 하필 그런 걸 만드는 바람에 여러 가지 부작용이 생기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술을 파는 사람이나 게임을 만드는 사람에게 그런 일을 하지 말라고 할 수 없듯이 아일랜드에 그 세법을 없애거나 고치라고 할 순 없다.

아일랜드 입장에서는 아마 이런 생각이 들 것이다. ‘프랑스 너희는 루브르박물관이나 에펠탑이 있어서 매년 수천만 명의 관광객이 오고 돈을 벌지만 아일랜드는 그런 게 없다. 우리가 프랑스 너희에게 에펠탑과 루브르박물관을 없애라고 하면 너희는 그걸 없앨 것인가. 너희 때문에 우리나라로 관광객들이 안 오는 건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너희가 가진 뭔가를 없애자고 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프랑스의 특산품이 에펠탑이라면 아일랜드의 특산품은 기업에 유리한 세법이다. 너희가 에펠탑이 없다면 돈을 벌 수 없듯이 우리도 이 법이 없으면 돈을 벌 수 없다. 다 먹고살자고 하는 일이니 우리 세법을 두고 왈가왈부하지 마라.’

디지털세와 세계 정부

우리는 현실 세계에서 정부와 법이 존재하고 그래서 술을 파는 것까지는 괜찮지만 마약을 파는 건 안 된다고 규정하고 단속을 한다. 그런데 아일랜드의 세법은 규제할 방법이 없다. 프랑스와 아일랜드의 이해관계를 중재할 수 있는 세계 정부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아일랜드의 독특한 세법이 낳은 애플과 유럽 국가들의 세금 갈등은 유럽 국가들이 새로운 카드를 꺼내들면서 또 다른 국면으로 접어들고 있다. 유럽 국가들이 애플의 매출 그 자체에 일정 비율의 세금을 부과하는 방식으로 과세를 하기로 했기 때문이다. 이 세금을 디지털세라고 부르는데 우리나라의 부가가치세와 비슷한 세금이다. 부가가치세는 그 물건을 팔아서 얼마의 이익을 보든 간에 물건 가격의 10%를 일률적으로 과세하는데 유럽 국가들이 고민 중인 디지털세가 이런 방식이다.

이런 식으로 세법을 바꾸면 애플이나 구글, 페이스북 등 다국적 기업들은 세금을 피해갈 방법이 없어지게 되지만 이번에는 미국 정부가 반발하고 나섰다. 애플이 프랑스에 세금을 내고 나면 미국 정부에 낼 세금이 줄어들게 되니 그걸 막기 위해서다. 미국은 디지털세를 미국 기업들을 겨냥한 세금으로 간주하고 유럽산 제품에 대해 관세를 높이겠다고 위협하는 중이다.

생각해보면 이 모든 게 세계 정부가 없기 때문에 생기는 갈등이다. 누군가는 생계를 위해서 하는 일이 다른 이들의 생활을 위협할 때 중간에서 기준을 만들고 규제를 해주는 역할을 하는 기관이 없는 게 이런 갈등의 원인일 것이다. 과연 이 문제는 언제쯤 풀리기 시작할까.

이진우 경제 팟캐스트 신과 함께를 제작하는 이브로드캐스팅의 대표이자 MBC 라디오의 경제 프로그램 이진우의 손에 잡히는 경제진행자다. 이데일리와 서울경제신문에서 기자로 일했다. 대표 저서로 <거꾸로 읽는 경제학>, <친절한 경제상식>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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