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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 사태로 풀린 뭉칫돈, 괜찮을까 본문

음식과 사람/이진우의 외식&경제

코로나19 사태로 풀린 뭉칫돈, 괜찮을까

월간 음식과 사람 2020. 6. 1. 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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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과 사람 2020.06월호 P.54]

Marketing point_이진우의 외식&경제

코로나
19 사태로 풀린 뭉칫돈, 괜찮을까

인간이 하는 거의 모든 행위는 경제와 관련이 있다
. 그만큼 경제는 우리 삶과 불가분의 관계다. 장기 불황으로 허덕이는 외식업경영자 처지에선 더 나은 선택을 위한 경제 지식의 필요성이 더욱 절실할 수밖에 없다. 당장의 가게 일로 눈코 뜰 새 없더라도 잠시나마 경제와의 티타임을 가져보자. 경제를 알아야만 돈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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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우 MBC 라디오 이진우의 손에 잡히는 경제진행자 photo shutterstock

이진우의  ‘ 외식 & 경제 ’

코로나19에 대응하기 위한 정부의 정책들은 하나같이 동일하다. 금리를 낮추고 돈을 푸는 것이다. 예를 들어보면 이런 것이다. 경제 뉴스를 읽다 보면 “코로나19 사태 이전 3조8000억 달러였던 미국 연방준비제도의 총자산이 6조 달러를 넘어섰다는 대목과 만나게 되는데, 이건 쉽게 말하면 미국의 중앙은행인 연준이 최근에 2조2000억 달러 이상을 찍어서 시중에 풀어주고 그 대가로 뭔가를 받아다 중앙은행 창고에 넣어놨다는 뜻이다.

그 뭔가는 대개 국채나 회사채들이다. 시중에 돌아다니는 그런 채권들을 사다가 창고에 넣어두면 그건 연준의 자산이 된다. 연준의 자산이 늘어난다는 건 연준이 시중에서 뭘 자꾸 사들인다는 뜻이고 그건 시중에 그만큼의 돈이 풀린다는 뜻이다. 우리가 시장에서 자꾸 뭔가를 사들이면 그만큼의 돈이 시장으로 풀려나가는 것과 동일하다.

연준 말고 미국 정부도 따로 돈을 풀고 있다. 4500억 달러의 예산을 새로 만들어서 정부가 회사를 하나 세우고 이 회사가 그 돈의 10배인 4조5000억 달러를 빌려온다. 그리고 그 돈을 시중에 뿌리는 정책이다. 정확히 말하면 그중의 절반쯤은 시중의 누군가에게 그냥 주고 또 절반쯤은 빌려주는 것인데 역시 돈을 시중에 뿌리는 정책이다.

왜 돈을 뿌리는지에 대해선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다. 코로나19 때문에 돈이 돌지 않고 그러다 보면 받아야 할 월급을 못 받거나, 팔아야 할 물건을 못 팔거나, 물건을 주고받아야 할 돈을 못 받는 사람들이 생겨난다. 그들에게 돈을 찍어서 공급하는 게 요즘 정책의 본질이다.

나쁜 정책? 좋은 정책?

그런 정책들을 뉴스를 통해 보고 들으면서 우리는 두 가지 걱정을 하게 되는데 둘 다 설득력 있는 걱정이다. 첫째, 이렇게 돈을 찍어서 사람들을 구제해도 괜찮은 것인가(그게 괜찮다면 왜 지금까지는 그런 일을 하지 않아서 실업자도 나오고 부도가 나는 기업도 나오게 방치했는가), 둘째, 돈을 찍어서 쓰는 게 괜찮더라도 그러면 돈이 많이 풀려나오게 될 텐데 그건 아무 부작용이 없을까 하는 걱정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게 아무 문제가 없을지, 아니면 큰 문제를 일으킬지 아무도 모른다. 그러나 분명히 말할 수 있는 것은 아무 문제가 없을 것이라고 낙관하는 사람들의 생각보다는 큰 부작용이 발생할 것이고, 이렇게 하다간 정말 큰 문제가 생긴다고 걱정하는 사람들의 예상보다는 별일이 없을 것이다.

첫 번째 걱정부터 좀 더 자세히 알아보자. 나라에서 돈을 찍어서 어려워진 기업이나 일자리를 잃은 사람들에게 돈을 주는 게 괜찮은가.

평소 같으면 괜찮지 않다. 나쁜 정책이다. 어려워진 기업은 어려워진 이유가 있으니 그 이유 때문에 망하거나 문을 닫는 건 당연하고 심지어 바람직한 일이다. 우리는 기업들이 망하는 건 나쁘고 기업들이 안 망하는 건 좋은 일이라는 단순한 구도에 빠지기 쉽지만, 생각해보면 우리가 좋은 일자리를 갖지 못하는 건 기업들이 잘 망하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다.

기업이 존재하려면 그 기업에 제공되는 토지와 설비와 자금과 노동자들이 있어야 한다. 그런데 어떤 기업은 똑같은 토지와 설비와 자금과 노동자로 1등 제품을 만들어내고 어떤 기업은 같은 조건에서도 3류 제품만 만들어낸다. 똑같은 식재료로 일류 요리사는 맛있는 요리를 만들어내지만 초보자들은 음식을 망쳐놓는 것과 같은 원리다.

그런데 다행히 3류 제품만 만들어내는 회사는 금방 망한다. 그래서 그 회사가 보유한 토지와 자본과 근로자와 설비가 다른 곳으로 팔려나가고 그걸 갖고 또 다른 제품을 만들어보려는 기업가가 나타나고 세계적인 기업이 탄생하기도 한다. 그런데 정부가 인위적으로 어떤 기업을 살리기 위해 계속 자금을 투입하면 그 기업은 망하지 않고 (그렇다고 효율적이고 우수한 기업으로 바뀌지도 않고) 토지와 자본과 인력을 계속 빨아먹으며 연명한다. 그래서 망해가는 기업, 일자리를 잃은 사람들을 계속 돕는 건 나쁜 정책이다.

그러나 코로나19로 생긴 위기는 아주 일시적인 위기일 뿐이라는 게 정부의 생각이다. 작년에 망한 기업은 그 기업이 뭔가 잘못했거나 부실해서 망한 것이지만 요즘 망하는 기업은 코로나19 때문에 운이 나빠서 망하는 것이니 불량한 기업은 망하게 두는 게 좋지만 우수하지만 운이 나쁜 기업은 망하지 않게 도와야 한다는 게 돈을 찍어서라도 기업들을 돕는 이유다.

물론 이 과정에서 안 그래도 망했어야 할 기업이 마치 코로나19 때문에 잠깐 위험해진 기업으로 분류돼 생명을 이어가게 될 수도 있다. 그게 조심해야 할 점이다. 세상 모든 게 다 코로나바이러스 때문이라고 설명하다 보면 그 어떤 문제점도 발견하기 어렵다.

불경기는 돈 많이 풀려도 괜찮은 시기

그럼 두 번째 걱정. 이렇게 돈을 계속 풀면 세상에 돈이 엄청나게 풀리고 그러면 돈 가치가 떨어지거나 무슨 사달이 나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그 걱정이 일리가 있는 것이 요즘 모든 나라의 중앙은행들이 새로 찍어내서 시중에 공급하는 돈의 양은 천문학적이라는 표현이 무색할 만큼 엄청나게 많다. 코로나19 사태 이전 38000억 달러였던 미 연준의 총자산이 6조 달러를 넘어섰다는 말은 연준이 최근 몇 달간 시중에 공급한 돈이 미국이 건국한 이래 지금까지 시중에 공급한 돈의 양과 거의 맞먹는다는 뜻이다. 이래도 괜찮을까.

생각보다는 괜찮다고 위로할 만한 몇 가지 요인이 있다. 첫째, 중앙은행이 돈을 푼다고 시중에 돈이 다 풀려나가서 돌아다니는 건 아니다. 예를 들어 어떤 회사가 이달 말에 1조 원의 대출을 갚아야 하는 만기일이 돌아오는데 코로나19 때문에 금융시장이 마비돼서 아무도 돈을 빌려주지 않는다고 가정해보자. 이제 이 회사는 자칫하면 부도를 맞게 된다. 그런데 중앙은행이 1조 원을 찍어서 이 회사에 빌려주면 이 회사는 그 돈 1조 원을 은행에 갚게 되고 은행은 그 돈을 다시 중앙은행에 맡기게 된다. 중앙은행에서 나간 돈이 잠시 시중에 머물다가 다시 돌아오는 것이다. 그러니 1조 원이나 되는 돈이 시중에 풀려나갔다고 걱정할 일은 아닌 것이다.

둘째, 시중에 풀려나간 돈이라고 해서 그게 모두 다 활발하게 돌아다니는 건 아니다. 눈치 빠른 독자라면 조금 전 1조 원이 중앙은행에서 빠져나갔다가 다시 되돌아오는 과정에서 약간의 의문을 느꼈을 것이다. 1조 원의 대출을 기업이 은행에 갚으면 은행은 왜 그 1조 원을 중앙은행에 다시 되돌려줄까.

이건 아주 좋은 질문인데 그 질문에 대한 답은 불경기에는 투자하거나 대출할 곳이 없기 때문이다. 은행은 그렇게 돌려받은 1조 원을 누군가에게 또 대출해줄 수는 있다. 그러나 중앙은행이 왜 1조 원을 시중에 풀게 됐을까를 떠올려보면 아무도 그 어떤 기업을 신뢰하고 돈을 빌려주지 않기 때문에 그 기업은 중앙은행이 찍어낸 돈을 받을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러니 은행도 그 기업에서 받은 1조 원을 그 어떤 기업에도 빌려주기 어렵다. 결국 그 돈은 은행 금고에서 잠자고 있게 되거나 중앙은행으로 다시 되돌아오게 된다.

1조 원이 시중에 풀려나가긴 했지만 그 돈은 세상을 돌아다니면서 부작용을 일으키는 게 아니라 그냥 조용히 어딘가에서 잠자고 있는 것이다. 정확히 말하면 기껏 시중에 내보낸 돈이 어딘가에서 조용히 잠자고 있는 상황을 우리는 불경기또는 경제위기라고 부른다. 불경기에는 돈이 돌지 않는다. 그래서 돈이 많이 풀려도 괜찮은 시기가 불경기다.

경기가 좋아지고 난 후가 걱정

셋째, 중앙은행이 시중에 풀어댄 돈이 시중에 돌아다니는 돈의 전부가 아니다. 즉 시중에는 훨씬 더 많은 돈이 풀려 있고 그래서 중앙은행이 맘 잡고 돈을 좀 푼다고 해도 시중에 돌아다니는 돈의 양은 걱정할 만큼 엄청나게 갑자기 늘지 않는다. 많은 이들이 돈이 이렇게 많이 풀려 있으니 그 돈이 여기저기 움직이면서 자산의 가격을 올려놓을 것이라는 설명은 실제 상황과 다소 차이가 있다.

실제로 한국은행이 시중에 풀어낸 돈(본원통화)900조 원 남짓인데 우리나라에 풀려 있는 돈의 총량은 5000조 원이 넘는다. 시중에 풀려서 돌아다니는 돈의 양(통화량)은 중앙은행이 시중에 푼 돈뿐 아니라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은행에서 대출을 받아가면서 늘어난 돈이 합쳐진 수치인데 은행 대출을 통해 늘어나는 통화량이 훨씬 많다.

은행이 대출을 해주면 그 순간 대출금액만큼의 돈이 세상에 새로 태어나는 셈이기 때문에 사람들이 은행에서 대출을 많이 받아갈수록 시중에 돌아다니는 통화량은 늘어난다. 우리는 은행은 사람들이 예금한 돈으로 대출을 해주는 것으로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대출을 해주면서 새롭게 돈을 창출하고 그 돈이 잠시 후 은행에 예금으로 들어온다.

그리고 그렇게 은행을 통해서 늘어나는 통화량은 중앙은행이 시중에 공급하는 화폐의 양이 늘어서 증가하게 되는 통화량에 비해 훨씬 많다. 그러니 중앙은행이 돈을 많이 풀었으므로 시중에 돈이 과거보다 훨씬 더 많이 풀려서 돌아다닐 거라는 생각은 잘못된 상상이다. 중앙은행이 돈을 풀면 시중에 돈이 늘어나긴 하지만 그건 시중의 전체 통화량에 비해서는 그리 큰 금액이 아니다.

정리해보면 중앙은행이 돈을 찍어서 시중에 풀어댄다고 해서 실제로 시중에서 활발하게 돌아다니는 돈의 양이 크게 늘어나는 것은 아니라는 얘기다. 그렇게 돈을 찍어도 불경기의 냉랭함 때문에 실제로 시중에서 활발하게 돌아다니는 돈의 양은 과거보다 더 줄어들 수도 있다. 사실은 그래서 불경기인 것이고 불경기의 치료가 어려운 것이다. 이미 시중에 풀려 있는 돈은 많지만 숨어서 움직이지 않고 안전한 예금에만 머물고 있으니 그 돈이 투자를 자극하지도 않고 소비에 활용되지도 않는다. 그게 불경기의 본질이다.

그럼 돈을 계속 찍어서 시중에 공급해도 되는 것일까. 별 부작용은 없을까. 별 부작용은 없다. 마치 비가 오는 산속에서는 모닥불을 피운다고 산불이 걱정되지는 않는 것과 같다. 경기가 나쁠 때는 시중에 풀려 있는 돈이 급속도로 위축되고 움직이지 않게 되기 때문에 중앙은행이 돈을 대량으로 찍어서 풀어도 돈이 활발하게 돌아다니지는 않는다.

그렇다면 그렇게 돈을 많이 풀어놓은 상황에서 경기가 좋아지면 어떻게 될까. 그게 걱정이긴 하다. 경기가 좋아지면 돈은 여기저기 활발하게 돌아다니면서 소비와 투자를 자극하기 때문에 그때부터는 시중에 많이 풀려 있는 돈이 문제가 될 수 있다.

그러나 그 걱정을 지금 하지 않는 이유는 경기가 좋아지고 난 후에 대한 걱정이니 일단 당장의 걱정은 아니기도 하고, 경기가 좋아지고 나면 그렇게 풀린 돈을 회수하면 되기 때문이다. 중앙은행이 돈을 풀 때는 시중의 채권을 사들이고 그 반대급부로 현금을 내보내는데 회수할 때는 그렇게 사들인 채권을 시중에 팔아서 돈을 회수한다.

문제는 경기가 아직 좋아지지는 않아서 돈을 회수할 상황은 아닌데 그렇다고 최악의 상황에서도 벗어난 것 같은 느낌이 드는 시기다. 그때 시중에 풀려 있는 돈은 경기가 아직 좋아지지는 않아서 공장을 짓거나 대규모 투자를 시작하지는 않지만, 최악의 상황에서는 벗어났으니 주가가 더 내릴 것 같지도 않은 주식을 사들인다. 경기가 별로 좋지도 않은데 왜 주식은 계속 오르는지 궁금하다면 그에 대한 대답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이진우 경제 팟캐스트 신과 함께를 제작하는 이브로드캐스팅의 대표이자 MBC 라디오의 경제 프로그램 이진우의 손에 잡히는 경제진행자다. 이데일리와 서울경제신문에서 기자로 일했다. 대표 저서로 <거꾸로 읽는 경제학>, <친절한 경제상식>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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