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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과 사람/이진우의 외식&경제

코로나19가 경제를 망치는 메커니즘

월간 음식과 사람 2020. 5. 12. 18: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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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과 사람 2020.05월호 P.62]

Marketing point_이진우의 ‘외식&경제’

코로나19가  경제를 망치는  메커니즘

인간이 하는 거의 모든 행위는 경제와 관련이 있다. 그만큼 경제는 우리 삶과 불가분의 관계다. 장기 불황으로 허덕이는 외식업 경영자 처지에선 더 나은 선택을 위한 경제 지식의 필요성이 더욱 절실할 수밖에 없다. 당장의 가게 일로 눈코 뜰 새 없더라도 잠시나마 경제와의 티타임을 가져보자. 경제를 알아야만 돈이 보인다.
editor 이진우 MBC 라디오 이진우의 손에 잡히는 경제진행자  photo shutterstock

코로나19 사태로 경제가 엉망진창이 되고 있다. 어떻게 바이러스가 퍼뜨리는 전염병이 이 거대한 경제 생태계를 마비시키는 걸까. 그럼 우리는 어떻게 대응해야 이 위기를 넘길 수 있을까. 과연 그 대응법이 있기는 한 걸까.

​​이 질문은 매우 중요하다. 대응할 방법이 있다면 위기를 넘기는 것은 시간문제이니 잘 버티면 되지만 대응할 방법이 없다면 지금이라도 가게를 접을 생각을 하는 게 현명한 일이기 때문이다.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이해하기 위해선 경제가 어떻게 돌아가는지를 직관적으로 알아야 하는데 이걸 꽤 재미있게 설명해주는 일화가 있다. 별로 길지 않으니 한번 들어보자.

세계에 금융위기가 닥치자 관광업으로 먹고살던 프랑스의 작은 마을도 관광객이 줄어들면서 큰 타격을 입었다. 생존을 위해 마을 주민 모두가 다른 사람에게 돈을 빌리고 빌려주면서 또는 서로 외상을 주고받으면서 살아가야 했다.

그런데 어느 날 그 마을에 낯선 관광객이 한 명 찾아와서 호텔에 방 하나를 예약한다. 그리고 체크인 보증금으로 100유로짜리 지폐를 호텔 주인에게 냈다. 손님을 받아서 기분이 좋아진 호텔 주인은 그 100유로를 들고 정육점으로 가서 정육점 주인에게 외상값을 갚았다. 정육점 주인은 고기를 공급해주던 낙농업자에게 달려가 미처 못 준 고깃값으로 그 돈을 줬고 낙농업자는 기쁜 마음으로 그 마을에 한 명 뿐인 매춘부에게 달려갔다. 매춘부는 받은 돈 100유로를 들고 호텔 주인에게 가서 그동안 밀린 대실료를 갚았다. 그런데 그때 호텔방으로 올라갔던 관광객이 다시 내려오면서 방이 맘에 들지 않는다고 방값을 환불해달라고 한다. 호텔 주인은 처음에 받았던 100유로를 그 낯선 관광객에게 다시 돌려줬고 관광객은 그 지폐를 받아서 지갑에 넣고는 그 마을을 떠났다.

생각해보자. 낯선 관광객이 마을을 찾아와서 한 시간 남짓 머무르다가 아무 일도 하지 않고 다시 떠났을 뿐이지만 그 관광객이 잠시 꺼냈다가 되가져간 100유로짜리 지폐 한 장은 온 마을을 돌아다니면서 그 마을 사람들의 빚을 모두 갚아버렸다. 지갑에서 잠시 나왔다가 다시 되돌아간 것뿐인데 그 덕분에 경제는 더없이 활발하게 돌아간 것이다.


불경기는 돈의 순환과 흐름이 멈춘 때문

경기가 좋다는 건 돈이 이렇게 빨리 순환되는 것을 의미한다. 그 과정에서 누군가는 돈을 많이 벌고 누군가는 버는 돈보다 쓰는 돈이 많겠지만 어쨌든 돈이 활발히 돌아다닐 때 우리는 경기가 좋다고 한다. 반대로 불경기는 돈이 줄어들거나 없어지는 게 아니라 돈은 주머니에 있는데 돈이 돌아다니지 않아서 사람들의 입장에서 보면 돈이 들어오지도 않고 나가지도 않는 것을 의미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사람들이 돈이 없어서 불경기가 오는 게 아니라는 점이다. 돈은 누군가의 주머니에 있고 그건 사라지지 않는데 그 누군가가 돈을 선뜻 꺼내들고 쓰지 않으면 그 순환과 흐름이 멈춰버린다.

생각해보면 사람은 하루 정도를 살아갈 돈만 있으면 아무런 문제 없이 살 수 있다. 그래서 평소엔 여윳돈이 있으면 어딘가로 자꾸 내보내서 수익을 거두려고 하지 현금으로 찾아서 안방 옷장에 넣어두는 사람은 거의 없다. 그런데 불경기나 경제위기가 닥치면 다들 돈을 갖고 있으려고만 한다. 마치 하늘에서 커다란 우박이 떨어지면 택시회사나 버스회사는 안전한 차고지에 차들을 숨겨두고 운행을 안 하게 되고, 그러면 도시는 자동차가 부족해서 난리가 나는 것과 똑같은 이치다.

금융시장도 비슷하다. 고객 A는 갖고 있는 여윳돈을 금융회사 B에 맡긴다. 그리고 금융회사 B는 그 돈을 C회사의 회사채를 사서 이자와 원금을 받는다. 그렇게 받은 이자 중의 일부를 고객 A에게 이자로 주고 남는 돈으로 회사를 운영하는 식이다. 평소엔 이런 돈의 흐름이 물 흐르듯 이어지지만 경제위기가 닥치면 A는 금융회사 B를 믿지 못하고 BC를 믿지 못해서 돈이 흐르지 못한다. 그러면 회사 C는 회사채를 발행해서 자금을 조달하지 못하고 그러면 물건도 못 만들고 직원 월급도 못 준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가 할 수 있는 정책은 어떤 게 있을까. 금융시장에서 생긴 문제는 요약하자면 C라는 회사가 그 어디에서도 돈을 빌리지 못해 괴로움을 겪고 있는 것이니 일단 정부 돈으로 C회사에 돈을 빌려주면 된다. B금융회사도 A고객이 돈을 맡기지 않아 일감이 사라져서 힘들 테니 B회사에도 정부가 돈을 빌려주면 된다.


더 큰 문제는 금융시장이 아닌 실물경제

요즘 미국 연방준비제도나 미국 정부가 하는 일이 이런 일이다. 미국의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연준)2조 달러의 유동성을 시중에 공급하기로 했다는 뉴스는 좀 더 풀어서 써보면 미국 금융시장에서도 C 같은 회사나 B 같은 금융회사가 돈이 없어서 쩔쩔매고 있으니 연준이 2조 달러의 돈을 마련해서 BC회사에 돈을 빌려주기로 했다는 의미다. 연준은 그 돈이 어디서 날까. 연준은 돈을 찍어낼 수 있으니 사실 연준이 동원할 수 있는 돈의 규모엔 제한이 없다.

이게 가능한 건 금융시장은 어차피 서로가 서로에게 돈을 빌리고 빌려주는 관계로 돌아가기 때문이다. 금융시장에선 어차피 아무도 누군가에게 돈을 공짜로 주지는 않는다. 고객 A도 금융회사 B에 돈을 맡길 뿐이고 금융회사 B도 기업 C에 돈을 빌려줄 뿐이다. 그 빌리고 빌려주는 관계가 코로나19 공포로 잠시 깨졌으니 연준이 돈을 잠시 빌려주면 되는 일이다.

생각해보면 아주 간단한 처방이다. 이렇게 간단한 처방을 왜 종전엔 못 썼을까 하는 생각이 들 만큼 간단하다. 과거엔 중앙은행이 위기가 왔을 때조차 돈을 함부로 찍어서 풀어서는 안 된다는 고정관념이 있었는데 그게 요즘 깨지고 있다. 그러다 보니 아니 이렇게 쉬운 방법이 있었다고?’라는 생각이 들 만큼 새롭고도 간단한 정책들이 쏟아지고 있는 것이다.

물론 이 해법도 지속가능하지는 않다. 돈을 빌려간 기업 C가 코로나19 때문에 돈을 벌지 못하면 돈을 계속 빌려줘야 하는데 언제까지 계속 빌려줘야 한단 말이냐는 질문에 답을 하기가 어렵다. 계속 이렇게 빌려주면서 코로나 바이러스가 사라지길 기대하는 수밖에 없다.

우리가 안고 있는 좀 더 큰 문제는 금융시장이 아닌 실물경제에 있다. 이건 정책으로 해결하기가 더 어려운 숙제다.

프랑스의 작은 시골 마을의 사례에서 보듯 경제는 서로가 상대방이 만들어낸 제품이나 서비스를 소비하고 즐기는 과정에서 돌아간다. 예를 들면 A는 아이스크림을 만들어 B에게 팔고 B는 그걸 사 먹고 힘을 내서 손님의 머리를 다듬어주고 C는 그렇게 머리를 다듬고 무대에 서서 노래를 하고 D는 그 공연을 즐겁게 본 후 다음 날 아침엔 A가 만드는 아이스크림 가게에 우유를 배달한다. 돈은 순간순간 모두의 주머니를 잠시 스쳐가지만 곧 사라질 뿐이다. 그러나 그 일이 끊임없이 순환되고 반복되기만 한다면 아무 문제가 없다.

코로나19가 불러온 위기는 이런 순환 고리를 무자비하게 끊는다. C의 공연은 바이러스 위험 때문에 취소되고 그러면 B가 운영하는 미용실엔 손님이 사라진다. 그러면 BA가 파는 아이스크림을 사 먹지 못하며 그럼 아이스크림 상인 AD에게 내일부터는 우유를 배달하지 마세요라고 말하게 된다. 단지 C의 공연이 바이러스로 취소됐을 뿐이지만 모두의 일자리가 순차적으로 사라진다.


불안이 남는 한 경제위기는 사라지지 않아

이런 상황에서 정부가 할 수 있는 일은 뭘까. 제일 먼저 떠오르는 아이디어는 공연이 취소된 C에게 마치 공연을 한 것과 똑같은 금액의 돈을 그냥 주거나 또는 빌려주는 것이다. 그러면 C는 그 돈으로 예전처럼 미용실을 갈 수도 있고, 어차피 무대에 설 일이 없으니 머리를 다듬지 않고 그냥 아이스크림을 사 먹을 수도 있다. 요즘 각국 정부들이 국채를 발행해서 마련한 돈으로 국민들에게 재난수당을 지급하는 게 모두 그런 효과를 기대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금융시장과는 달리 실물경제는 정부의 바람대로 돌아가지는 않는다. C는 정부의 재난수당이 다음 달에도 또 나올지, 아니면 안 나올지 알 수 없기 때문에 그 돈으로 미용실을 가거나 아이스크림을 사 먹지 않고 그 돈을 그냥 저축할 가능성도 높다. 그러면 정부가 지급한 돈은 아무 의미 없이 C의 서랍 속에서 잠을 자게 된다.

그러면 정부는 C가 돈을 쓰지 않을 가능성을 걱정해서 아이스크림을 파는 A와 미용실을 하는 B에게도 모두 돈을 지급해야 한다. 그러나 아이스크림 가게 주인 A는 어차피 손님이 없으니 D에게 내일부터 우유를 배달하지 말라고 할 수밖에 없다. 그러면 정부는 D에게도 돈을 지급해야 한다. 물론 돈을 지급해도 불안한 사람들은 돈을 잘 쓰지 않는다. 돈을 부어도 돈이 돌지 않는 게 불경기의 특징이다.

정부는 현금 대신 유효기간이 있는 쿠폰이나 선불카드를 제공해서 그 기간 안에는 그 돈을 꼭 쓰게 하려고 하지만 사람들은 어차피 쓰려고 했던 필수적인 지출을 그 쿠폰이나 선불카드로 하고 원래 쓰려고 했던 돈을 안 쓴다. 그러면 소비의 총액은 역시 마찬가지다.

그걸 막으려면 사람들에게 평소에 쓰던 돈보다 훨씬 많은 돈을 안 쓰면 한 달 안에 사라지는 등의 매우 짧은 유효기간을 정해놓고 지급할 수밖에 없는데 여기엔 두 가지 치명적인 문제가 있다. 그러려면 천문학적인 돈이 필요한데 정부도 그 많은 돈을 구해올 길은 없으며, 어찌어찌 구해다 그런 정책을 쓰게 되면 시중에 넘쳐나도록 풀린 그 돈이 나중에 어떤 일을 불러올지 알 길이 없다. 그래서 그 카드는 사용하기 어렵다.

결론은 한 가지다. 국민 모두에게 돈을 지급해도 그들이 미래에 대한 불안으로 그 돈을 쓰지 않으면 그 돈은 모두 서랍 속으로 들어가고 만다. 생각해보면 당연한 일이다. 코로나19로 생긴 불안은 코로나 바이러스가 사라지기 전엔 없어지지 않을 테니까. 사람들의 마음에 불안이 남아 있으면 돈은 잘 돌지 않는다. 그리고 정부와 중앙은행이 그걸 해결하지는 못한다.

프랑스의 작은 시골 마을의 호텔 주인이 이 관광객이 혹시 방이 맘에 안 든다고 다시 내려와서 환불해달라고 할 수도 있으니 일단 이 100유로를 쓰지 말고 갖고 있어보자고 생각했다면 그 시골 마을의 경제는 그대로였을 것이다.

코로나19가 불러온 경제위기도 결국 마음속에서 생긴 병인데, 인류는 마음속에 생긴 불안이 경제를 위축시키는 이 증상을 치유할 방법은 아직 찾지 못하고 있다. 코로나 바이러스가 사라지고 나서도 그런 바이러스가 또 나타날 수 있다는 불안이 사람들의 마음속에 남아 있다면 이 경제위기는 사라지지 않는다.

이진우 경제 팟캐스트 신과 함께를 제작하는 이브로드캐스팅의 대표이자 MBC 라디오의 경제 프로그램 이진우의 손에 잡히는 경제진행자다. 이데일리와 서울경제신문에서 기자로 일했다. 대표 저서로 <거꾸로 읽는 경제학>, <친절한 경제상식>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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