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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과 사람/이진우의 외식&경제

저금리와 양극화의 인과관계

월간 음식과 사람 2021. 1. 5. 1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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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과 사람 2021.01 Marketing point_이진우의 외식&경제

인간이 하는 거의 모든 행위는 경제와 관련이 있다. 그만큼 경제는 우리 삶과 불가분의 관계다. 장기 불황으로 허덕이는 외식업 경영자 처지에선 더 나은 선택을 위한 경제 지식의 필요성이 더욱 절실할 수밖에 없다. 당장의 가게 일로 눈코 뜰 새 없더라도 잠시나마 경제와의 티타임을 가져보자. 경제를 알아야만 돈이 보인다. editor 이진우 MBC 라디오 이진우의 손에 잡히는 경제진행자 photo shutterstock

중앙은행의 금리 결정은 시중금리를 뒤따라간다

주식과 채권은 해와 달 같은 관계다. 해가 뜨면 달이 지고 달이 뜬 하늘엔 해가 없듯이 주식과 채권도 밤낮이 다르다. 경기가 좋으면 주식이 오르고 반대로 채권은 값이 내린다. 반대로 경기가 나쁘면 주식은 내리지만 채권은 오른다.

그런데 이런 원칙이 수년 전부터 깨지고 있다. 주식도 오르고 채권도 오른다. 주가도 사상 최고가를 경신하고 있고 금리도 사상 최저치다. 금리가 내려가면 채권은 값이 오르는 것이니 금리가 최저치라는 건 채권값이 사상 최고치라는 뜻이다.

동물의 세계에서는 열대지방에 사는 사자와 북극에 사는 북극곰이 한 동네에서 어슬렁거리면 둘 중 하나는 이상한 녀석인 것인데, 자산시장에서는 요즘 그런 일이 일상적이다. 주식과 채권이 동시에 오른다.

이유는 간단하다. 그냥 다 오르는 중인 것이다. 그게 주식이든 채권이든 땅이든 집이든 돌멩이든 금덩어리든 그게 뭐든 다 오른다. 저금리가 가져온 새로운 풍속도다. 어떤 자산이든 다 오르는 현상이 저금리 때문에 생긴 결과라면 앞으로도 중요한 것은 금리다. 내년에는 주식시장이 어떻게 될지, 부동산은 어떻게 움직일지 궁금하다면 내년에도 계속 저금리일 것인지만 알면 된다. 제로(0)에 가까운 낮은 금리는 앞으로도 계속될까.

그걸 예측하려면 저금리 현상이 왜 나타나게 됐는지를 알아야 한다. 저금리가 세상에 등장하게 된 바로 그 이유를 알아야 앞으로도 그게 계속될 것인지 아닌지를 예상할 수 있지 않겠는가.

여기서 우리가 잠깐 짚고 넘어갈 게 있다. 우리는 금리를 중앙은행이 올리거나 내린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내년 또는 그 이후에 금리가 어떻게 될지는 중앙은행(한국은행)의 손에 달려 있다고 생각하지만 그건 사실이 아니다.

중앙은행의 결정에 따라 금리가 올라가거나 내려가는 게 아니라 오히려 시중금리가 올라가거나 내려감에 따라서 중앙은행이 기준금리를 올리거나 낮춘다. 예를 들어 경기가 나빠서 10년짜리 채권 금리가 1%밖에 안 된다고 가정해보자.

이 말의 의미는 누군가가 “10년 동안 돈을 빌려 쓰고 싶은데 이자는 연 1%만 주겠다고 할 때 기꺼이 그러겠다고 돈을 빌려주는 사람들이 꽤 있다는 뜻이다. 1%밖에 안 되는 이자에도 선뜻 돈을 빌려주겠다는 사람들이 있다는 건 연 1%에도 돈을 빌려다 쓰겠다는 사람이 별로 없다는 뜻이다.

그런데 중앙은행이 시중금리가 너무 낮아서 안 되겠다고 생각해서 금리를 2%로 올린다고 가정해보자. 그럼 시중금리가 2%로 올라갈까. 그렇지 않다. 1% 이자에도 돈을 빌려가겠다는 사람이 드물었던 이유는 그렇게 싼 금리로 돈을 빌려서 뭔가에 투자하더라도 투자수익률이 1%가 채 안 나오기 때문인데 금리를 2%로 올리면 누가 대출을 받아가겠는가. 중앙은행이 금리를 2%로 올리더라도 시중금리는 여전히 1%에 머물 것이다.

경기가 좋아지고 뜨거워져서 연 2% 정도의 수익률을 올릴 만한 사업거리가 여기저기 넘쳐날 때 사람들은 그제야 연 2% 금리에 돈을 빌리려고 할 것이다. 결국 금리는 시중의 경기 상황에 따라 정해질 뿐이며, 중앙은행의 금리 결정은 시중금리를 뒤따라가는 것일 뿐이다.

금리가 낮다는 건 돈이 흔하다는 것

다시 아까의 질문으로 돌아와 보자. 저금리는 왜 생겼을까. 금리는 왜 낮아지게 됐을까.

금리가 낮다는 말은 돈이 흔하다는 것과 동의어다. 돈이 흔하니까 금리가 낮은 것이다. 기꺼이 싼 이자에라도 돈을 빌려주겠다는 사람들이 많아졌다는 뜻이다. 왜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세상이 너무 좋아진 탓이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인터넷 때문이다. 쉽게 검색하고 쉽게 찾아가고 쉽게 배달받을 수 있게 되는 바람에 생긴 일이다.

예를 들어 산꼭대기에 3명의 사람이 살고 있다고 가정해보자. A는 호떡을 팔고 B는 노래를 잘해서 매일 공연을 하며 C는 총을 잘 쏘는 사냥꾼이다. 산꼭대기 경제는 그런대로 잘 돌아갈 것이다. ABC에게 호떡을 팔고 그렇게 번 돈으로 B의 공연을 보러가고 남은 돈으로는 C가 잡은 토끼고기를 사먹는다. B는 공연 수입으로 C가 잡아온 노루고기를 사먹고 디저트로 A가 만든 호떡을 또 사먹는다. C역시 토끼와 노루를 팔아서 번 돈으로 호떡을 사먹고 B의 공연을 즐긴다.

그런데 어느 날 A가 호떡을 만드는 비법을 알아내서 호떡이 엄청 맛있어졌다고 가정해보자. 비극은 그때부터 시작된다. BCA가 만든 호떡을 먹지 않으면 잠이 안 올 만큼 호떡 중독에 걸려버렸다. 그래서 A가 호떡 가격을 올리더라도 A의 호떡을 계속 사먹는다. 하루에 한 개씩만 사먹다가 두 개, 세 개로 늘린다.

반면 A는 호떡을 만드느라고 바빠져서 B의 공연을 보러가기 힘들어졌다. 그러다보니 B의 공연에는 이제 C만 가끔 온다. B는 공연으로 먹고 살기가 힘들어진다.

AC가 잡아오는 노루고기보다 이웃마을의 치킨이 좀 비싸지만 매우 맛있다는 걸 알게 된 후부터는 C와의 거래도 점점 줄이기 시작한다. A는 돈이 많으니 치킨을 자주 배달시켜 먹는다. C도 가난해진다. 가난해진 C는 이제 B의 공연을 보러갈 돈이 없고 BC가 사냥한 고기를 사먹을 돈이 없다.

이게 다 A가 기가 막힌 호떡을 만들기 시작한 다음에 생긴 일이다. 너무 맛있는 이 호떡을 도저히 안 먹을 순 없기 때문에 BC는 대출을 받아서라도 호떡을 사먹는다. A의 주머니는 점점 더 두둑해진다.

여기서 A의 고민이 생긴다. 돈이 많아진 A는 이 돈을 어디에 투자하거나 누구에게라도 빌려줘야 이자라도 생길 텐데 A의 돈을 선뜻 빌려갈 사람이 없다. BC는 파산 직전이라 돈을 빌려주면 못 갚을 테니 안 된다. A는 집 앞에 이렇게 써 붙여놓기 시작했다. ‘10년 동안 대출해드립니다. 사상 최저 이자율 연 0.1%.’

눈부신 발전과 혁신의 결과물, 양극화

지금 이야기한 이 장면은 요즘 세상이 돌아가는 원리와 매우 흡사하다. 저금리가 나타나게 된 원인도 마찬가지다.

통신과 인터넷이 발달하면서 어떤 기업이든 좋은 제품을 만들면 세계 시장을 석권하기가 매우 쉬워졌다. 그런 제품이 등장해서 팔리고 있다는 걸 누구나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나이키 운동화는 과거에는 미국의 일부 매장에서만 팔렸지만 이제는 나이키 홈페이지에 접속해서 신용카드로 결제하면 전 세계 어디든 배달해준다. 동네에 나이키 매장이 없다는 이유로 그냥 다른 운동화를 사서 신던 소비자들은 이제 찾기 어렵다. 과거에는 운동화 시장에서 1등도 살아남고 7등이나 10등도 살아남았지만 이제는 1등과 2등 정도만 살아남는다. 굳이 가성비가 떨어지는 3, 4등 브랜드를 사서 신을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예전에는 나이키 매장은 멀고 동네 신발가게에는 나이키가 없어서 아무 브랜드나 사서 신었다).

이런 변화는 소비자들 입장에서는 매우 바람직한 변화다. 굳이 5등이나 7등짜리 제품을 살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이 덕분에 나이키는 계속 큰돈을 벌고 다른 운동화 회사들은 문을 닫는다. 양극화가 심해진다는 뜻이다.

양극화는 그 자체로만 보면 그리 바람직한 현상이 아니지만 그 원인을 거슬러 올라가면 눈부신 발전과 혁신의 결과물이다. 세상이 좋아지면 좋아질수록 양극화는 더 심해지는 게 당연하다.

누군가가 가성비가 더 좋은 제품을 만들고 그게 사람들에게 쉽게 알려져서 사람들이 가장 가성비가 좋은 제품을 언제든 구입하고 만족도를 높일 수 있는 시스템은 우리가 늘 꿈꾸는 세상이다. 그러나 그 결과는 양극화다.

양극화는 부유층들의 주머니에 돈이 계속 더 쌓이게 만들고 저소득층은 계속 대출을 받아야 살 수 있도록 만든다. 소비자들이 대출받은 돈은 다시 나이키나 스타벅스 같이 돈을 잘 버는 기업들의 금고로 흘러들어간다. 왜냐하면 그들이 만드는 제품은 매우 훌륭하기 때문이다. 반면 나이키나 스타벅스는 버는 돈의 아주 일부만 비용으로 지출한다. 그런 놀라운 수익성과 이익률은 기업 혁신의 결과물이므로 박수를 보낼 만하지만, 그 결과 나이키나 스타벅스의 회사 금고에는 매일 매일 돈이 쌓인다. 나이키 역시 회사 정문에 이런 팻말을 붙이고 싶을 것이다. ‘10년 동안 대출해드립니다. 사상 최저 이자율 연 0.1%.’

저금리 현상이 왜 생기게 됐는지 그 이유를 설명드렸다. 그렇다면 이런 저금리 현상이 사라지고 금리가 다시 오르려면 어떤 일이 벌어져야 할까. 사람들이 나이키 운동화가 아니라도 괜찮으며 맨발도 나쁘지 않다고 느끼기 시작해야 한다. 스타벅스가 이디야와의 경쟁에서 고전하기 시작하고 나훈아가 버는 돈과 시골 읍내 나이트클럽에서 나훈아 흉내를 내는 모창 가수 너훈아가 버는 돈이 엇비슷해져야 한다. 사람들이 나훈아의 공연을 영상으로 보느니 그냥 읍내에 가서 너훈아의 공연을 봐도 충분하다고 생각해야 한다. 애플이 스마트폰을 잘 만들긴 하지만 중국산 스마트폰 회사도 먹고 살아야 하니 같은 값이라도 중국산 스마트폰을 쓰겠다는 사람이 늘어나면 된다.

그런 일이 쉽게 벌어질 수 있을까. 미래에는 금리가 지금보다 더 오를 수 있을 것인가 아니면 저금리가 계속될 것인가에 대한 답은 더할 나위 없이 명확하다.

 

 

이진우 경제 팟캐스트 신과 함께를 제작하는 이브로드캐스팅의 대표이자 MBC 라디오의 경제 프로그램 이진우의 손에 잡히는 경제진행자다. 이데일리와 서울경제신문에서 기자로 일했다. 대표 저서로 <거꾸로 읽는 경제학>, <친절한 경제상식>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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