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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여 년간 대 이어온 평택 원조 고박사집, ‘고복수평양냉면’ 고복수 대표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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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여 년간 대 이어온 평택 원조 고박사집, ‘고복수평양냉면’ 고복수 대표

월간 음식과 사람 2022. 9. 7. 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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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과 사람 2022.09 P.64] Real Interview_대박집 숨은 비법을 찾아서

전국의 내로라하는 유명 식당들의 애로사항 중 하나는 오랫동안 이어온 맛과 명성을 어떻게 유지할 것인가에 대한 것이다. 맛을 고수하자니 시대에 뒤떨어진다는 얘기를 듣고, 트렌드를 따르자니 맛을 놓칠 수 있는 게 현실. 전통음식인 냉면을 4대째 80여 년간 이어오고 있는 고복수평양냉면을 찾아 롱런하는 비결을 들어봤다. editor 조윤서 photo 박해윤

‘고복수평양냉면’은 1980~90년대 전국 3대 냉면집 순위에 들었던 평택 ‘고박사집’의 명맥을 이어오고 있는 전통 냉면 맛집이다. 고복수 대표는 젊은 시절 부친 고순은 옹으로부터 육수 내는 법을 배웠다. 음식은 과학이니 모든 걸 계량하라는 게 부친의 가르침이었다.

“그 시절의 ‘고박사집’을 기억해주시는 손님들께 감사하고 송구할 따름입니다”

대박집 비결 1

1980년대 전국 3대 냉면집 ‘고박사집’에서 이어진 명성과 손맛

경기 평택시에서 가장 유명한 냉면집이라면 모두가 입을 모아 얘기하는 곳이 있다. 간판은 고복수평양냉면이라 돼 있지만 으레 고박사집으로 통하는 이곳의 역사는 1910년대 일제강점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친조부였던 고() 고학성 옹이 평안북도 강계에서 문을 연 평양냉면의 깊고 개운한 맛이 아버지 고순은(98) 옹을 거쳐 고복수(66) 대표에게로 전해졌다.

아버지께서 육남매의 넷째로 태어나셨을 때 이미 할아버지께서 ‘중앙면옥’이라는 평양냉면집을 하고 계셨대요. 강계는 산도 많고 큰 강이 흐르는 수려한 곳이에요. 옛날엔 꿩이 많았으니 잡아다가 돼지고기와 섞어 육수를 내셨다죠. 요즘도 평양냉면 맛을 심심하고 밋밋하다고 표현하시는 분들이 있는데, 그때도 그랬던지 허리춤에 아지노모도(미원)를 넣고 다니면서 일본 순사들이 오면 냉면에 조금씩 뿌려주셨다고요.

 

당시 중앙면옥은 강계에서 꽤나 인기가 많아 아버지와 함께 TV에 출연한 고향 친구분들이 그 시절 냉면을 주제로 이야기꽃을 피우기도 했다. 할아버지의 평양냉면은 시간이 꽤 흘러 남쪽에서 재현됐는데, 본래 미8군에서 엔지니어로 근무했던 부친이 미군부대가 철수한다는 풍문을 듣고 그 대비책으로 아버지의 냉면집을 창업하기로 한 것. 어릴 때부터 수도 없이 냉면을 먹어봤고 어깨너머로 배운 냉면 기술이 있어 전통을 재현하는 게 어렵지 않았던 것이다. 이렇게 1972년 어머니의 고향 평택에서 문을 연 평양냉면 전문점이 고박사집이다. 한때 전국 3대 냉면집 순위 안에 들었을 정도로 유명세를 떨치기도 했다.

메뉴도 할아버지가 하신 것과 똑같이 평양냉면, 순녹두빈대떡, 돼지고기 제육, 수육 등이었어요. 평양냉면 면발은 본래 메밀로만 만드는데 100% 메밀만 쓰면 툭툭 끊어지고 냉면이 빨리 뭉쳐서 아버지가 하실 때부터는 전분을 섞게 됐죠. 메밀은 원래 날씨가 찰 때 더 맛있어요. 그래서 겨울엔 메밀 성분 70%에 전분을 섞고, 여름엔 메밀을 60% 정도만 씁니다. 오장육부가 뜨거워지는 겨울엔 시원한 평양냉면이 오히려 제격이에요.”

부친이 평택에서 문을 연 고박사집은 그 메뉴, 그 맛 그대로 고복수평양냉면으로 상호를 변경, 올해로 50년이 됐다. 고복수 대표는 열여덟 살 때부터 아버지 밑에서 냉면을 배웠고 학교 다니면서 배달을 도맡아 했다. 워낙 개성이 강했던 아버지는 식당에만 계시는 스타일이 아니어서 각종 아이디어를 실현시키는 건 어머니와 그의 몫이었다. 어머니는 60대에 작고하셨으니 그 후로 집안의 냉면 맛을 지키는 건 오롯이 고 대표의 몫이 됐다.

대박집 비결 2

전통의 평양식 냉면에 트렌드 반영한 신메뉴의 꿀조합

고복수평양냉면의 메뉴와 레시피는 초창기 고박사냉면과 90%는 같다. 평양냉면 육수를 낼 때 요즘엔 미국산 소고기 앞다리살을 사용하지만 전통적인 레시피대로 만들어 진하고 구수한 국물 맛엔 거의 변함이 없다. 국내에서 생산되는 메밀 중 제일 찰지고 맛이 좋다는 강원도 메밀로만 면을 뽑기에 국물과 함께 후루룩 면발 삼키는 맛이, 이게 냉면이구나 싶다. 먹기 전에 채소와 고기를 넣고 끓여낸 뜨거운 면수를 먼저 마셔 속을 달랜 후 취향에 맞게 식초를 조금 뿌려 먹으면 더 맛있다. 비빔냉면은 맵지도 않으면서 고소하게 씹히는 식감이 그야말로 별미인데, 소고기와 돼지고기를 삶아 사골 국물 우려낸 것을 식힌 후 평택 배를 비롯한 각종 과일, 견과류 등 갖은 재료를 섞어 고유의 양념을 만든다.

이들 냉면과 곁들여 먹는 음식으로는 대대로 내려오는 제육, 수육이 여전히 제일 인기다. 돼지고기 삼겹살 부위를 삶아서 숭덩숭덩 굵게 썰어 내는 게 제육이고, 양념까지 해서 무친 게 제육무침, 소고기 양지를 양념 안 하고 무쳐낸 게 소고기수육이다.

이북에서도 냉면엔 제육을 먹었어요. 요즘엔 만두가 인기라 저희 집에서도 5년 전에 추가했는데 이북식으로 크게 만들었더니 반응이 영 시원찮더라고요. 거기선 만두를 손바닥만 하게 만들어 먹었대요. 배고픈 시절이라서 그랬는지 물냉면도 ‘엎어말이’라고 하는 곱배기를 예사로 먹었고요. 대신 엎어말이에는 고춧가루를 조금 쳤던가 봐요. 물냉면에 고춧가루를 치면 동치미나 고기에서 나는 미세한 잡내를 잡아줘 개운한 맛이 나거든요. 저도 물냉면을 너무 좋아해서 그렇게 먹는데, 한번 드셔보시면 맛이 다를 겁니다.

가성비 좋고 인기인 알뜰 세트엔 냉면, 만두 2개, 녹두빈대떡이 포함된다.

고복수평양냉면의 녹두전 역시 냉면만큼이나 그 역사가 오래됐다. 옛날엔 100% 돼지기름에 거의 전을 띄우는 수준이었던 반면, 건강을 생각하는 요즘엔 돼지기름 대신 옥수수유, 콩기름을 섞어서 부쳐낸다. 비계가 조금 붙은 돼지고기에 숙주, 고사리 등 채소가 들어가 한데 섞이면 고소하게 씹히는 특유의 맛과 식감을 낼 수 있다.

이러한 전통적인 메뉴들 외에 고 대표가 15년 전쯤 미국 필라델피아에 갔다가 햄버거 콤보 세트를 보고 힌트를 얻어 개발한 게 냉면 세트 메뉴다. 취향대로 골라 먹을 수 있게 떡갈비 세트, 알뜰 세트, 불고기 세트 등을 만들었다. 이 밖에 물냉면과 비빔냉면을 반반씩 담아주는 반반냉면도 찾는 손님들이 많다. 반반냉면은 30여 년 전에 만든 메뉴로, 당시엔 별로 인기가 없던 것이 시대를 거슬러 요즘 대세 메뉴로 자리 잡았다고. 그 시절에 이미 스테인리스 소재로 전용 그릇까지 제작했을 정도였다. 바쁜 시간에 면을 조그맣게 말아 올려야 해서 손이 많이 가지만 누리소통망(SNS)상에서 인기 만점인 효자 메뉴다.

대박집 비결 3

대를 이어 찾아오는 단골손님들의 변함없는 성원과 사랑

고복수평양냉면엔 오랜 역사만큼이나 4대째 찾아오는 가족 손님들이 꽤 많다. 아이가 아이를 낳고 부모가 돼서 찾아오는 경우는 더 많다. 전국 3대 냉면집이라고 소문나자 5공화국 시절엔 여름이면 청와대 경호실 직원이 단골로 찾아오곤 했다. 육수, 고명 등을 가져가 직접 면을 뽑아서 말아 먹었다는 일화가 있다. 부친 고순은 옹은 청와대를 방문해 전두환 전 대통령에게 냉면을 말아주기도 하셨다.

“1980~90년대엔 내로라하는 정치인들이 고박사집을 많이도 찾아왔어요. 경부고속도로를 지나다가 찾아오거나 아산만 만들 때 오가면서 들르거나 했죠. 군인들도 많이 오고, 낚시꾼들, 연예인 단골손님들도 많았어요. 김희갑, 남보원, 이기동, 최희준, 최무룡, 이미자, 김수미, 노주현, 이덕화 씨 등이 저희 가게 단골이셨어요. 소문을 많이 내주셨죠.”

장사가 잘되자 여기저기서 가맹점 요청이 왔고, 고 대표는 16년 전쯤 육수공장을 차려 프랜차이즈 사업을 시작했다. 옛날 방식 그대로 직접 가마솥에 정성껏 육수를 끓여내 가맹점들에 보냈으니 몸은 고달팠지만 나름 성과도 있었다. 가슴에 두고두고 한이 될 일은 그가 일하느라 정신없을 시기에 일어났다.

어쩌다 보니 아버지께서 만드신 고박사집이라는 상호를 넘겨주게 됐습니다. 수십 년간 이어온 냉면집 이름이 하루아침에 바뀌니 손님들도 어찌된 영문인가 하셨죠. 그 후 누님의 이름을 따서 고복례냉면으로 했다가 몇 년 전 고복수평양냉면으로 상호를 변경했습니다. 프랜차이즈 사업은 접었어요. 아버지께선 젊은 시절 육수를 배우러 일본, 중국까지 다녀올 정도로 냉면에 대한 열정과 조예가 깊으셨는데, 당신이 만드신 고박사집 상호를 되찾아오는 게 숙원 사업이 됐습니다. 단골손님들도 많이 응원해주시니까 잘될 거라 믿습니다.”

고복수평양냉면이야말로 평택의 역사라고 손꼽는 사람들이 많다. 서울 신촌 굴다리 밑에 있던 고박사가 지점이었다는 것, 그의 아들이 용인시 수지구에서 고씨4대명가를 운영하고 있다는 것도 알 만한 손님들은 다 아는 사실. 출입문 정면의 벽에 걸려 있는, ‘인생은 도전의 연속이다라는 고순은 옹의 좌우명이 담긴 액자가 고복수평양냉면의 매일을 새롭게 하고 가족의 꿈을 실현케 해줄 것이다. 앞으로 100년쯤 더 갈 수 있는 대물림 식당 얘기다.

고복수평양냉면

주소 : 경기 평택시 조개터로 1번길 71(합정동)

전화 : 031-655-4252

영업시간 : 오전 11~9(브레이크타임 오후 3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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