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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현지인들이 추천하는 '영진돼지국밥'

월간 음식과 사람 2020. 5. 4. 1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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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과 사람 2020.05월호 P.68]

가게 앞에서 직원들과 함께한 김성호 전 대표(왼쪽 세번째)와 아들 김도원 씨(맨 왼쪽)

Real Interview_대박집 숨은 비법을 찾아서

부산 현지인들이 추천하는 전통의 향토음식, ‘영진돼지국밥김성호 전 대표

맑고 진한 돼지국밥 한 그릇이면 뼛속까지 든든해집니다~”

서울에 설렁탕이 있다면 부산엔 돼지국밥이 있다. 마산, 밀양, 대구 등지에도 돼지국밥이 유명하지만 그래도 6·25전쟁 이후 서민사회에 광범위하게 뿌리내린 부산 돼지국밥을 우선으로 쳐준다. 피난민의 애환과 추억을 간직한 향토음식에서 2019년 부산 미래유산으로 선정되기까지 돼지국밥의 맛과 형태도 시대에 따라 변천해왔다. 1995년 문을 연 이래 건강하고 특색 있는 맛으로 지역민들의 사랑을 받아온 영진돼지국밥을 찾았다.

editor 조윤서 photo 김성남

대박집 비결 1

값싼 서민음식이라도 건강을 생각한 차별화된 맛으로 승부

“횟집 주방장에서 돼지국밥집 사장으로 변신하기 위해 매일 국밥을 먹었어요~”

부산 지하철 1호선의 역사적인 출발점인 신평역. 이곳에서 300m가 채 되지 않는 골목길에 현지인들에게 더 이름난 돼지국밥집이 있다. 신평공단의 긴 담장이 저만치로 보이고 다소 투박한 옛날식 간판과 외관이 부산의 서민음식이라는 돼지국밥 이미지와도 잘 어울리는 영진돼지국밥이다. 평일 오후 2시가 넘은 시각이었지만 19개 테이블은 빈자리가 거의 없었다. 김성호(56) 전 대표가 19955월 문을 열던 당시의 이야기를 들려줬다.

저는 원래 횟집 주방장이었기에 돼지국밥엔 애초에 뜻이 전혀 없었어요. 그런데 연이 되려고 그랬는지 어느 날 제가 사부로 모셨던 횟집 형님이 혹시 국밥을 해볼 마음은 없냐고 하시더라고요. 가보니 부부가 밥은 먹고 살겠던데 하면서요. 1년 넘게 가게를 보러 다녀도 돈이 모자라서 횟집을 못 차리고 있었거든요. 전 그 즉시 안 하겠다고 했습니다. 횟집에 대한 미련도 있었고 자존심도 너무 셌던 거죠. 그런데도 형님은 재차 권하셨고 할 수 없이 그럼 가서 밥은 먹어보자 해서 왔다가 덜미를 잡혔어요(웃음).”

다 쓰러져가는 국밥집은 손맛 좋으신 어느 할머니가 운영하고 계셨다. 영진돼지국밥이라는 상호는 그대로 두기로 하고 전세를 얻어서 새 단장 후 오픈했다. 나름 새로운 각오로 출발했지만 오픈하고 2~3년은 장사가 잘 안 돼 어려움을 겪었다.

어떻게 하면 손님이 많아질까 고민을 거듭했어요. 한 번에 8000장 정도 스티커를 제작해서 뿌리면 손님들이 많이 찾아올 것 같았지만 그렇지 않았죠. 사실은 그중에서 충성도 있는 단골손님 한 팀만 와도 대박인 거예요. 그 팀을 만족시키면 입소문을 타고 손님이 점점 늘거든요. 결국 음식 장사에선 맛있다는 구전이 최고인 거죠. 어쨌든 한 7년간은 근처 신평공단, 장림공단으로 나가는 배달이 더 많았을 정도로 홀과 배달의 편차가 컸어요.”

너무 좁아 1999년쯤 옆 가게를 터서 확장하기까지 고생도 많았다. 우선 맛을 안정화하는 게 관건이었다. 주인이 바뀌었으니 이전 돼지국밥의 맛과 차별화하기 위해 밤잠 안 자고 메뉴 개발에 매달렸다. 믿을 수 있는 고기 도매업체를 찾기 위한 시행착오의 과정도 거쳤다. 매일 스스로 만든 국밥을 먹어보며 미세하게 변하는 맛을 잡기 위해 애를 썼다. 오픈 후 5년 동안은 1년에 이틀만 쉬었을 정도.

결국 제가 개발한 국밥은 건강하고 맛있고 푸짐한 것이었어요. 저희 국밥은 구수한 맛은 좀 떨어져요. 기름기가 거의 없거든요. 돼지고기는 100kg을 구웠을 때 기름이 40kg일 정도로 많은데, 기름기가 많으면 맛이 구수해지긴 하지만 누린내 잡기가 힘들죠. 기름기 둥둥 뜬 걸 싫어하는 분들도 많아서 그 당시부터 맑은 국물로 승부했는데 요즘은 갈수록 건강을 생각하는 게 트렌드잖아요. 대신 서민 음식인 만큼 고기는 배불리 드실 수 있도록 양껏 대접합니다. 공단 지역이라서 특히 더 양이 많은 편이기도 하고요.”

부산에 있는 여러 스타일의 돼지국밥 중에서도 최근엔 돼지고기 특유의 누린내가 나지 않는 맑은 국밥을 선호하는 사람들이 많아지는 추세다.


영진돼지국밥 내부

대박집 비결 2

돼지고기 특유의 잡내 없앤 맑고 진한 국물과 푸짐한 육고기

“국물이든 건더기든 손님들이 원하시면 더 드리는 게 국밥집의 최선이죠~”

돼지국밥은 한마디로 돼지 뼈 삶은 물에 고기를 넣고 끓여내는 것이다. 경우에 따라 고기는 같이 끓이지 않고 토렴 방식으로 데워내기도 한다. 이때 국물이 맑은가 탁한가의 차이가 호불호를 가른다. 부산의 베테랑 택시기사는 넌지시 언질을 주기도 했다. 여기 와서 돼지국밥을 먹을라치면 문 열고 들어갔을 때 누린내 안 나는 집이 맛집이라고. 부산 말로 돼지냄새가 안 받쳐야한다고. 영진돼지국밥이 그런 곳이었다.

맑은 국물을 내려면 돼지 사골만 100% 넣고 몇 시간 삶은 후 기름기를 걷어내는 작업을 여러 번 거쳐야 해요. 돼지 누린내 같은 잡내를 없애는 방법은 수십 년간 경험에 의해 축적된 거라 집집마다 노하우가 달라요. 한 가지 말씀드릴 수 있는 건 잡내를 양파나 마늘 같은 첨가재료로 잡는 건 10% 정도밖에 안 된다는 것이죠. 처음부터 좋은 고기를 쓰고 손질도 잘해야 잡내가 안 납니다.”

그날 만든 국물은 그날 다 쓰는 것을 원칙으로 하기 때문에 여기선 매일 아침 커다란 회전 곰솥에 양질의 돼지 뼈를 넣고 육수 끓일 준비를 하는 걸로 하루 일과를 시작한다. 이렇게 만든 국물을 베이스로 전지와 목살을 토렴해서 데워 파, 양파양념 다대기를 얹으면 돼지국밥 완성이다. 뚝배기에 넘칠 듯 가득한 뽀얀 국물 사이로 얇게 썬 고기들이 뭉텅이로 보일 정도로 양도 많고 푸짐하다. 국물에 이미 간이 돼 있지만 다대기를 잘 풀어서 먹어야 제대로 된 맛을 즐길 수 있다. 부추무침이나 청양고추 몇 조각을 취향에 따라 적당히 넣으면 매콤하고 칼칼한 맛이 추가된다. 밥과 함께 소면도 같이 나오는데 뚝배기에 말아 먹으면 자칫 국물의 온도를 떨어뜨릴 수 있지만 이때 국물이 모자랄까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된다. 어떻게 알고 직원이 먼저 뜨거운 국물을 권한다. 새 뚝배기에 국자까지 얹어 나와 덤이라기엔 미안할 정도.

부산의 여느 돼지국밥집과 마찬가지로 이곳에서도 국밥과 함께 수육을 판다. 수육을 주문하면 항정살 수육과 함께 큼지막한 두부와 볶음김치가 한 움큼 나온다. 정확히 말하면 두부김치 수육인 셈. 부드럽고 쫄깃한 식감이 좋은 항정살은 새우젓에 찍어 먹거나 쌈장에 마늘, 고추, 양파 등을 넣어 상추에 싸먹어도 좋다. 그저 간장 소스에 고추냉이를 풀어서 찍어 먹어도 별미다. 수육을 주문해도 뽀얀 국물은 한 뚝배기 나오니 어떤 메뉴를 주문하건 양이 모자라지는 않다. 국밥집이긴 하지만 이곳의 베스트 메뉴는 단돈 만 원 하는 수육백반. 밥과 함께 두부김치 수육 한 접시, 고기를 뺀 뚝배기 국물이 한가득 나온다. 단품 메뉴인 순대도 확실히 다른 지역과는 다른 맛이라 순대국밥, 내장국밥과 더불어 먹어볼 만하다. 무엇을 먹든 테이블 위에 놓인 아삭한 깍두기, 배추김치와 함께 하면 풍미가 배가된다. 채소 반찬은 매일 중개인을 통해 엄궁농수산물센터에서 구입해온 좋은 걸로만 만들어 신선하다.

오픈하고 몇 년은 저도 새벽마다 장을 보러 다녔어요. 어느 정도 자리 잡은 다음부터는 중개인을 통해 받아요. 그게 좋은 재료를 쓰는 가장 빠른 지름길이더라고요. 비용을 지불한 만큼 중개인은 좋은 걸 사올 수밖에 없고, 그 대가는 손님상에 고스란히 올라가는 거죠.”

주말엔 웨이팅이 길지만 국밥이니만큼 회전이 빨라서 손님을 오래 기다리게 하지는 않는다. 다만 주방 사정에 따라 브레이크타임이 걸릴 때가 있단다. 예정에 없던 손님이 갑자기 많이 들이닥쳐서 육수가 모자라는 경우다. 미리 육수를 더 많이 쟁여두지 않는 건 그날그날 소진해야 영진돼지국밥만의 맑고 건강한 국물 맛을 유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7~9월 여름휴가철이 아닌 이상 영진돼지국밥의 손님은 99%가 단골손님이며, 지역 사람들만이 아닌 전국구다. 그래도 주중 점심은 공단 등 근처에서 오시는 분들이 많고, 토요일에 오는 외부 손님들 중 한 명은 꼭 단골손님이 껴 있기 마련이라고. 해외 교민이 공항에 내리자마자 택시 타고 달려오는 경우도 비일비재하고, 외국에 유학 간 자녀들에게 급랭 포장해 항공편으로 보낸다며 몇 팩씩 포장해가는 손님들도 더러 있다. 이런 고마운 손님들에게 김 전 대표가 지난 25년간 원칙처럼 고수하고 있는 건 알아서 퍼주기.

국물이든 건더기든 손님들이 더 드시고 싶어 하면 그냥 드리는 게 옳죠. 부산에 국밥집도 많고 맛집도 많은데 일부러 저희 가게에 찾아오신 게 얼마나 고마워요. 맛있게 식사하시다가 소주 반 병이 남았으면 안주로 드실 만큼은 눈치껏 더 드리는 게 예의이기도 하고요. 손님이 얘기하기 전에 먼저 가져다드리는 게 직원들한테도 몸에 배었어요.”


 

영진돼지국밥 메뉴

대박집 비결 3

직원들 돼지국밥집 사장 만들어주는 창업 인큐베이팅

“부산의 돼지국밥이 앞으로도 롱런하려면 젊은 피가 동해야 하니까요~”

처음 문을 열던 당시엔 이 신평동 골목에 겨우 중국집 하나 있을 정도로 주변이 휑했는데 요즘엔 신평역에서 들어오는 골목마다 식당으로 빼곡해졌다. 음식의 종류도 다양해져서 예전엔 없었던 새로운 메뉴들이 틈새를 비집고 세상에 나온다.

저희 가게 돼지국밥도 25년 전 오픈할 때에 비하면 조금씩 맛이 변해왔을 거예요. 왜냐면 고기 위에 얹는 고명을 쑥갓을 썼다가 방앗잎도 넣어봤다가 부추를 썼다가 했으니까요. 저나 손님들 입맛도 시대에 따라 알게 모르게 변했을 테고. 지금도 부산엔 돼지국밥집이 엄청 많지만 저희 국밥과 경쟁할 만한 돼지국밥이 없습니다.”

치열한 경쟁의 틈바구니에서 영진돼지국밥이 하루하루 문을 열 수 있었던 건 손님에 대한 배려와 겸손을 잊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한 달 전쯤 코로나19 여파로 잠시 휴업했을 땐 그동안 경황이 없어서 못 했던 리모델링을 했다. 부분적으로 있었던 좌식 룸을 전체 입식으로 바꾼 것. 그는 돼지국밥이 서민음식이어서 더 손님들께 잘해야 한다고 했다.

돼지국밥은 아무리 맛을 내도 고퀄리티 음식은 아니에요. 그러면 서민음식이 아닌 거죠. 우리 이웃 같은 손님들이 자주 드나드는 곳이라 배려를 소홀히 하면 안 돼요. 겉보기에 아주 대단치 않게 보이는 손님일수록 정성껏 모시라고 가르치고 있어요. 보통 겉만 보고 무시하게 되는 그런 분들을 우선적으로 챙기라고요. 어디 가서 대접 받지 못한 사람들은 마음이 상하면 잘 돌아오지 않거든요. 많이 가진 손님은 오히려 잘 삐지지 않아요.”

또 하나 그의 철칙은 거래처에 절대로 갑질하지 말라는 것. 좋은 재료를 확보해야 하는 식당이야말로 진짜 을의 입장이기에 함부로 거래처를 바꾸지도 않고, 실수가 있어도 서로 좋게 개선해가면서 꾸려왔다. 직원도 마찬가지다. 그는 직원이 제 발로 나가지 않는 이상 한 번도 해고해본 적이 없다. 그래서 지금 영진돼지국밥엔 13~15년 된 직원들이 몇 명이나 되고, 주방 이모들도 대부분 7~8년 이상 근무하고 있다.

특이하게도 현재 12명의 직원 중에는 장차 창업해서 나갈 사람들이 몇이나 된다. 부산, 경남, 양산 등지에 있는 영진돼지국밥은 프랜차이즈라기보다는 이처럼 직원들이 나가서 창업한 경우이거나 혈육, 일가친척들이 대부분. 5~6년 가르쳐서 직원들을 식당 사장 만들어 내보내는 건 김 전 대표가 오래전부터 해온 일이다.

저는 직원이 가게에 출근한 첫날 얘기합니다. 적금통장 하나, 공과금통장 하나, 자율통장 하나를 만들라고요. 한 달 월급이 180만 원이라 치면, 165만 원은 저금하게 해요. 밥은 여기서 먹고 잠은 직원 숙소에서 자면 되니까. 이렇게 모아서 5년이면 1억 원에서 12000만 원은 돼요. 주변에서 조금 도와주고 하면 작은 국밥집 하나 차릴 수 있죠. 학교 다닐 때 공부 안 하던 친구들이라도 겸손과 인내를 배우고 근검절약하면 내 가게 차릴 수 있습니다.”

그동안 홀, 카운터, 주차일 돕는 직원들까지 다 국밥집을 차려 독립했다. 동기 부여된 직원들이 더 열심히 일했음은 물론이다. 그런 와중에 아들 김도원(29) 씨가 영진돼지국밥에 합류한 건 6년 전쯤이다. 동아대 국제무역학과 재학 중 4년간 톱을 놓치지 않았던 실력파였는데 2년 전 정식으로 영진돼지국밥의 대표가 됐다.

아들이 학교 다닐 때 공부를 꽤나 했어요. 저로선 자식이 하고 싶은 걸 응원해야 마땅하지만 마음은 다 그렇지 않잖아요. 어느 날 가게에 결원이 생겨 아들한테 며칠 와서 주차일 좀 봐달라고 했죠. 그게 일주일이 가고 한 달이 가고 일 년이 가면서 결국 6년 가까이 됐네요(웃음). 저는 아들 믿고 그동안 못 다녔던 구경도 다니고 그럽니다. 그래도 버릇이 돼서 매일 출근은 하고 있어요. 그러면 잔소리할 게 또 보이고. 이 자리에서 벌써 25년이나 버텼네요. 영진돼지국밥은 앞으로도 꿋꿋이 부산의 맛을 지켜가겠습니다.”

돼지국밥 한 그릇에 소주 한 병이면 하루의 피로가 풀린다는 어느 부산 토박이의 말이 진정성 있게 와 닿았다. 단돈 만 원으로 즐길 수 있는 향수 어린 전통의 맛이 이곳에 있다. 투박하지만 속내 깊은 부산의 인심은 덤이다.


영진돼지국밥 본점

주소 : 부산 사하구 하신번영로 157번길 39 / 051-206-3820

영업시간 : 오전 9시 30분~밤 9시 30분

휴무일 : 매주 일요일(명절기간 휴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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