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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석꾼 집안에서 청주 외식 명소로 반세기 넘게 이어온 온정, ‘봉용불고기’ 정각현 대표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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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석꾼 집안에서 청주 외식 명소로 반세기 넘게 이어온 온정, ‘봉용불고기’ 정각현 대표

월간 음식과 사람 2020. 8. 6. 16: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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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과사람 2020.08 P.80] Volunteer_나누고 섬기는 외식인

냉동삼겹살로 만든 파절이 불고기가 동글동글하다면 언뜻 고개를 갸우뚱할지 모른다. 독특한 이 외식 메뉴의 명맥을 이어온 주인공은 충북 괴산에 살던 시골댁이었다. 그 시절 누구나 한 번쯤 거쳤을 법한 가난과 빚, 고단한 하루를 딛고 일어나 청주시 우암동 골목을 밝히고 있는 옛집, ‘봉용불고기를 찾았다. 시대의 아픔과 전통을 동시에 간직한 그곳의 주인장들은 대를 이어 주변에 온정의 손길을 내밀고 있었다.
editor 조윤서 photo 김성남

청주시 청원구에 있는  34 년 전통의 봉용불고기 앞에 선 김필순 어머니와 정각현 대표 .

대를 이은 공덕이 헛되지 않도록 전통을 지켜가겠습니다~”

냉동삼겹살 파절이 불고기로 골목 기사식당에서 청주 명소로 우뚝

“국내산 1등급 돼지고기를 냉동 숙성해 부드럽고 잡내 없이 맛있어요~”

충북 청주시 청원구 우암동 골목엔 동네 사람들은 물론 관광객들까지 연일 줄을 서는 지역의 명소가 있으니, 바로 봉용불고기. 그 시작은 괴산 시골집의 어머니가 자녀들 고등학교 뒷바라지를 위해 청주 시내로 나오면서 살림살이에 보태려고 취직한 식당 일에서부터였다. 1986년 정각현(50) 대표의 모친인 김필순(73) 어르신이 남편 정재규(75) 씨와 함께 식당을 인수하면서 본격적인 봉용불고기 시대가 열렸다.

어머니가 서른아홉 되시던 해에 식당에 취직하셨어요. 원래가 조용하고 성실한 분이라 식당 일을 열심히 하셨던가 봐요. 안주인이 2년 후 식당을 내놓게 됐다며 인수하지 않겠느냐고 묻더래요. 그때 아버지 친구분들이 십시일반으로 돈을 걷어 도와주셔서 봉용불고기가 저희 것이 됐고, 그때부터 34년간 이 동그란 불고기가 명맥을 이어오고 있습니다.”

정 대표의 집안은 본래 괴산군 청천면에서 농사를 크게 짓던 부잣집이었다. 형제자매가 모두 돌아가고 막내로서 귀둥이로 자란 아버지는 결혼 후 양계장도 하고 소도 키우는 등 여러 사업을 했지만 모두 실패해 빚을 많이 지셨다. 학자 집안의 귀한 딸로 자라 어릴 때 시집온 어머니 역시 식당에도 한번 안 가봤을 정도로 세상 물정을 몰랐으나 어떻게든 빚을 갚아보려고 안 해본 일이 없었다.

김필순 어르신은 봉용불고기에 취직하기 전까진 웬만한 남자들 하는 일을 다 해봤을 정도로 고생이 많았다고 했다. 빚은 졌지만 남편은 늘 돈 못 갚고 죽으면 안 된다며, 천한 일이라도 해서 갚아야 된다고 입버릇처럼 말하곤 했다.

희한하게도 우리가 하면서부터 그냥 장사가 잘됐어요. 우리 집 불고기는 얼렸다 동그랗게 썬 삼겹살을 간간한 간장 양념에 파절이랑 같이 볶아서 먹어요. 어떤 이들은 고기가 싸구려 냉동제품 아니냐고 하는데 우리는 옛날부터 지금까지 국내산 1등급만 써요. 생고기는 질기고 돼지 잡내가 나는데, 냉동 숙성하면 육질이 부드럽고 잡내도 없어져서 계속 그렇게 해왔어요. 부부가 합심해 24시간 쉬지도 않고 열심히 불고기를 팔아서 15년 만에 빚을 다 갚았죠. 그땐 정말 그 어렵던 순간들이 한꺼번에 다 사라지는 기분이었어요.”

봉용불고기의 트레이드마크인 동그란 돼지고기 삽겹살.

고깃덩이를 비닐에 말아서 소시지처럼 기다랗게 만들어 3~4일 냉동 보관한 다음에 썰면 모양이 동그랗게 된다. 이 동그란 돼지고기 삼겹살은 봉용불고기의 트레이드마크다. 그러나 이 작업을 30년이나 하신 부친께서 결국 몇 년 전 손목에 염증이 생겼고, 아들인 정 대표는 중대한 결정을 내려야 했다. 부모님의 젊은 시절을 바친 오랜 식당을 물려받아 대를 잇기로 한 것. 안정적인 공무원 생활을 접고 청주로 내려온 게 2016년이었다.

베푸는 건 집안 전통, 조부님 이어 부친까지 주변에 손길

“밤길에 지게 짊어지고 온 동네 사람에게 쌀 퍼주시는 일이 다반사였다죠~”

여전히 집에 빚이 많을 때였는데도 부친은 봉용불고기를 오픈하면서부터 수익금의 일부를 떼서 주변에 베풀기 시작했다. 정 대표가 다니던 괴산군 청안면 부흥리 백봉초등학교에 10년 넘게 급식비를 현금으로 대줘서 밥 못 먹는 아이들이 여럿 배곯지 않고 학교를 다닐 수 있었다. 어느 날은 그 급식을 먹은 애들이 어떻게 주소를 알고 고맙다고 식당으로 깨알 같은 글씨로 편지를 보내오기도 했다. 그렇게 돈을 대주다가 나중엔 아예 급식소 건물을 새로 지어주었다. 시골집이 있는 괴산군 경로당에는 연탄값을 대주고, 해마다 청천면 마을축제 때는 빼먹지 않고 후원금을 내는 것도 일이었다. 봉용불고기를 인수하게 도와준 친구 아들들은 대학까지 다 가르쳐 졸업시켰다. 20년간 대한적십자사를 통해, 16년간 사랑의열매를 통해 소외된 이웃을 도왔다. 관내 소년소녀가장, 홀몸어르신에게 보낼 사랑의 쌀에 몇 년째 지원금을 내고 있기도 하다.

이처럼 부모님이 지난 34년간 행한 숱한 선행들은 주변에 알려진 것도 있고 묻힌 것들도 있지만 그 흔적들은 지금도 시골집 방에 수북한 감사패들로 남아 있다. 이제는 정 대표가 바통을 이어받은 훈훈한 그 나눔의 미덕은 사실은 오래전 시아버지 때부터 비롯된 거라고 김필순 어르신은 얘기했다.

베푸는 건 집안 전통인 것 같아요. 시아버님은 일제강점기부터 보릿고개, 6·25전쟁 등을 다 겪은 옛날 분이시고 집안 대대로 농사를 많이 지으셨어요. 이래저래 자식들을 다 잃고 막내인 제 남편만 남게 되자 식구도 별로 없으니 주변에 베풀자고 하셨던가 봐요. 장에 가서 밥을 오래 굶어 얼굴이 누렇게 뜬 동네 사람을 만나면, 자네 모월 모시 밤에 동네 사람들 잘 때 우리 집에 지게 짊어지고 오게나 하시곤 이불 속을 파내고 거기에 쌀을 가득 담아 주셨대요. 쌀 얻어가는 걸 이웃들에게 들켜 창피해하지 않도록요. 그걸 나중에 시아버님 돌아가시고 삼년상 치르면서 알았어요.”

문상 온 사람들이 하나둘 식구들이 모르는 이야기보따리를 풀어놓았다고 한다. 어른 생전에 이렇게 저렇게 도움을 많이 받았다는 사연들이 여러 가지였다. 부창부수라고 시어머님도 당시에 쌀 사러 오는 사람들을 절대 그냥 보내지 않고 다 밥을 먹여서 보내셨다. 지금 봉용불고기에 이만큼이나 손님이 찾아와 집안이 부흥하게 된 것도 돌아가신 시부모님의 은덕 때문일 거라는 말이었다. 요즘도 봉용불고기에는 밥때면 빈자리를 찾기가 힘들다. 평일엔 400~500, 주말엔 900~1000명 정도의 손님들이 별미를 맛보기 위해 방문한다.

그 시절 봉용불고기 맛 그대로, 온정의 손길도 그대로

“가업 계승은 부모님의 시간들을 물려받는다는 특별한 의미가 있어요~”

봉용불고기는 인수한 지 10년이 지난 1996년에 현재의 신관으로 이전했다. 빚 다 갚고 9000만 원 가지고 새로 차린 것이었다. 그동안 다이옥신이다 구제역이다 해서 다른 식당들이 다 장사가 안될 때에도 봉용불고기는 잘됐다. 변함없이 국산 돼지고기만 쓴다는 걸 손님들이 알아주었기 때문이다. 요즘에도 물김치는 김필순 어르신이 일주일에 서너 번 직접 담그고, 김장도 1년에 5000포기 해서 시골집 창고에 보관했다가 가져다 쓰니 맛이 변할 틈이 없다. 코로나19 사태에 3주간 매출이 반으로 줄었지만 곧 예전과 같은 수준으로 회복했다.

부모님의 대를 이어 봉용불고기를 책임지게 된 지 이제 4. 정 대표는 예전에 아버지가 하시던 돼지고기 냉동보관 작업을 전담하고 있다. 가공 과정에서 간혹 뼛조각이나 털 같은 게 나올 수 있어 남에게 맡길 수도 없단다. 그래도 어머니가 매일 식당에 나오셔서 카운터를 지키며 단골손님들을 반겨주시니 너무도 든든하다. 머리를 맞대고 먹던 조그만 기사식당에서 34년이 지나 손님들로 문전성시인 지금까지도 그때 그 시절의 택시 기사들이 찾아와 향수를 달래곤 한다. 혼자 와서 먹는 게 미안해선지 요즘엔 나이 지긋한 기사 손님들은 뜸한 편이다. 그래도 불고기 양을 좀 줄이고 가격은 내려서 1인분에 7500원 하는 기사 메뉴를 따로 만들어 두었다.

공무원 그만둘 때 주변에서 말리는 사람들이 많았어요. 막 승진해서 부러울 게 없던 때였거든요. 하지만 정년이 보장된 공무원보다 부모님이 평생 하신 가업을 물려받는 게 더 의미 있을 것 같았어요. 봉용불고기는 한창 때 부모님의 땀과 열정이 고스란히 묻어 있는 곳이니까요. 딴짓하지 말자, 아버지 어머니 하시던 대로 뭐든지 그대로만 하자, 그렇게 결심했어요. 다행히 손님들이 맛있게 드시곤 음식 맛이 똑같다고 하실 때 보람을 느낍니다.”

그는 3~4년 후에 건물을 새로 짓고 싶다고 했다. 그때는 지금처럼 건물 옆에 또 건물을 갖다 붙이는 식이 아니라 손님들 위주로 동선을 바꿀 생각이다. 음식의 맛과 서비스는 옛날 봉용불고기 맛 그대로, 할아버지 때부터 아버지를 거쳐온 온정의 손길도 그대로. 카운터에 앉아 손님들을 바라보는 김필순 어르신은 과거와 현재를 잇는 오작교 역할을 할 것이다. 그렇기에 손님들이 이제 그만하시고 쉬라 해도 좀처럼 발길을 끊지 못한다. 처음이자 마지막일 그의 식당, 봉용불고기는 오래된 요술 램프처럼 하루하루 시간의 때를 묻혀가고 있었다.

봉용불고기

충북 청주시 청원구 상당로 203번길 14(우암동 131-4)

전화 : 043-259-8124

영업시간 : 오전 8~10(·추석 전날과 당일 휴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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