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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박집]어르신이 행복한 동네 꿈꾸는 은평구 주민들의 사랑방, ‘효면옥’ 전봉효 대표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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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박집]어르신이 행복한 동네 꿈꾸는 은평구 주민들의 사랑방, ‘효면옥’ 전봉효 대표

월간 음식과 사람 2020. 9. 4. 15: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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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과사람 2020.09 p.6] 8Real Interview_대박집 숨은 비법을 찾아서

냉면집이지만 어르신들의 갈비탕 사랑은 아무도 못 말려요~”
예부터 물이 있는 곳에 사람이 모여 살고 농사를 지었다는데, 실제로 물이 있는 곳엔 유난히 집도 많고 식당들도 많다. 서울 은평구 불광천 무지개다리 앞에도 지역주민들이 다 아는 대박 냉면집이 있다. 흔히 대박집이라 하면 한 시간은 족히 줄 서서 먹는 식당을 떠올리면서 매출과 순익이 대단할 거라 생각하지만 꼭 그렇지만도 않다. 16년간 어르신들에게 식대를 깎아주고 있는 효면옥은 순익보다 할인액이 곱절이나 되는 그런 곳이다.
editor 조윤서 photo 조영철

대박집 비결 1

오픈 때부터 16년간 이어온 65세 이상 어르신 가격 할인정책

“용돈을 허투루 쓰지 못하는 어르신들 마음은 다 똑같을 거라 생각했어요~”

은평구에서 유명한 냉면집이라면 효면옥을 빼놓을 수 없다. 불광천 응암역에서 새절역 구간에 놓인 무지개다리 바로 옆에 있는 건물이다. 1층 전체가 주차장이라 계단 몇 개를 올라가면 천장이 높고 통풍이 잘되는 널찍한 식당이 반긴다. 어중간한 오후시간에도 홀 안에는 냉면이나 갈비탕을 드시는 어르신들이 많았다. 코로나19에 장마까지 겹쳐서 평소보다 손님이 없는 편이란다. 본래 이곳은 점심시간이면 30분에서 1시간은 기다려야 먹을 수 있는 은평구 명소이자 어르신들의 사랑방과도 같은 곳이다. 전봉효(48) 대표는 친형 밑에서 8년간 외식업소 운영에 대해 밑바닥부터 배웠고 2004년 효면옥을 차렸다.

아내와 몇 날 며칠 고심하다 상호를 효면옥이라 지었어요. 이름을 걸고 새롭게 시작하자는 의미이긴 했지만, 제 이름에 라는 글자가 들어간 건 지금 생각해보면 운명 같아요. 스님이 이름을 지어주셨는데 산봉우리처럼 효도 많이 하며 살라고 봉효라고 지으셨대요. 그땐 몰랐죠, 여기가 어르신들의 사랑방이 될 줄은.”

효면옥에는 어르신 손님들이 40% 정도 되는데, 대부분 단골손님이다. 유독 어르신들이 많이 찾는 이유는 특별한 할인정책 때문이다. 오픈 당시부터 만 65세 이상 손님은 11식에 한해 냉면과 갈비탕값의 일부를 할인해주고 있다. 처음엔 할인율을 적용하다가 셈법이 어려워 지금은 일괄적으로 현금일 경우 2000, 카드일 경우 1000원을 깎아준다.

어르신 할인을 하게 된 이유는 작고하신 친할아버지 때문이었어요. 용돈을 아무리 많이 드려도, 좋은 데 가서 드시라고 그렇게 말씀드려도 식사는 꼭 전통시장에서 1000, 2000원 하는 국수만 사드셨죠. 평생 한복을 입고 다니셨던 할아버지는 절약정신이 몸에 배어 있으셨어요. 한복 허리띠에 난 구멍 두 개에 늘 돈을 돌돌 말아서 넣고 다니면서도 쓰질 않으셨으니까. 자식들이 준 용돈을 허투루 쓰지 못하는 어르신들 마음이 똑같을 거라 생각했습니다.”

오픈 당시 냉면 가격이 6000원이었는데 어르신들에겐 4000원만 받았다. 전 대표의 표현대로라면 꼬리에 꼬리를 물고입소문이 났고 나이 지긋하신 손님들의 발길이 잦아졌다. 싸고 맛있는 냉면을 먹을 수 있다는 소문에 본의 아니게 대박이 나기 시작했다. 16년이 흐른 지금, 테이블 28개에 정직원만 아홉 명인데도 여름엔 평일 700, 주말엔 1500명 정도까지 손님이 찾아오는 유명 식당이 됐다.

점심시간엔 거의 경로당 수준이에요(웃음). 하지만 처음부터 운영이 순조로웠던 건 아니었어요. 첫해엔 3000만 원이 적자 나서 소상공인 대출을 받아야 했고, 이듬해에는 500만 원을 장모님께 빌렸죠. 3년째 되니까 비로소 매출이 상승곡선을 그리기 시작했어요. 4년째부터는 그야말로 빵 터지기 시작했죠. 한 달 매출이 1억 원만 되면 소원이 없겠다 했는데, 15000만원이 넘었으니까요. 그 후로도 매출이 떨어진 적은 없어요.”

효면옥의 어르신 할인정책은 6~7년 전 어르신 만세사업이라는 캠페인으로 은평구의 다른 업소로 확산되기에 이르렀다. 구청장이 나서서 이 좋은 정책을 은평구 전체로 확대하자고 했던 것. 총괄위원장은 전 대표가 맡았고, 동주민센터 직원과 직접 은평구의 식당들을 일일이 찾아다니며 정책을 설명하고 동참을 호소했다. 신사동에서만 12개 업소가 참여했고, 응암동과 역말사거리의 식당들에서 따라 하기 시작했다.

대박집 비결 2

맛있는 냉면과 냉면보다 더 맛있는 갈비탕의 환상적인 콤비

“할인해준다고 대충 만들지 않고 양질의 비싼 천연재료로 정성껏 만듭니다~”

가격도 중요하지만 식당에선 무엇보다 음식이 맛있어야 하는 법. 냉면집인 만큼 날씨가 더워질라치면 효면옥에선 물냉면, 비빔냉면, 회냉면이 불티나게 팔린다. 물냉면은 직접 담근 동치미와 고기 육수로 맛을 내서 감칠맛을 더했다. 살얼음이 낀 말간 국물은 달큼하면서 새콤하고 진한 육수의 맛을 낸다. 고구마 전분 100%를 사용한 쫄깃한 면발이 국물과 잘 어울렸다. 고구마 전분은 밀가루에 비하면 몇 배는 더 비싸지만 면발의 찰진 식감을 위해 고수하고 있다. 냉면 150그릇 정도 나오는 20kg짜리 전분 한 포대를 주말이면 3~4포대는 써야 수요를 맞출 수 있다.

물냉면에 고명으로 올리는 얼갈이배추라든가 국물 맛을 좌우하는 동치미는 소진되는 대로 수시로 담가야 해요. 숙성시키는 데 시간이 걸려서 늘 동치미 국물이 어느 정도 비축돼 있는지 확인하는 게 일이죠. 동치미를 담가서 실온에 일주일 놔두면 뽀글뽀글 기포가 올라오는 시점이 있어요. 여름철엔 3일 정도면 기포가 올라오기도 하고 겨울엔 그 이상이죠. 이때부터는 꺼내서 냉장고에 넣고 다시 일주일을 보관했다가 사용해요.”

물냉면이 한여름에 수요가 많다면, 수육이 올라가는 비빔냉면, 간재미가 올라가는 함흥식 회냉면은 사시사철 인기다. 비빔냉면의 양념장 포인트는 일체의 화학조미료를 사용하지 않고 쇠고기를 잘게 갈아서 볶은 후 과일과 함께 버무리는 데 있다. 쇠고기가 자잘하게 씹히는 식감이 아주 좋다. 간재미에 막걸리를 넣고 삭혀서 양념으로 버무린 정통 함흥식 회냉면은 오돌오돌 씹히는 간재미회와 면발이 어우러져 매콤하게 당기는 맛이다. 모든 냉면값은 8000원이고 어르신들에겐 6000.

효면옥이 냉면집이기는 하지만 어르신들이 냉면보다 더 좋아하시는 게 갈비탕이에요. 갈비탕도 냉면처럼 어르신 할인이 되거든요. 일행 중에 면을 싫어하는 분들을 고려해 메뉴에 넣은 게 갈비탕인데, 지금은 냉면보다 더 인기네요. 비가 오나 눈이 오나 그저 갈비탕을 찾으시는데, 찬 바람 들기 시작하면 따뜻한 고깃국으로 몸보신해야 하니까, 여름엔 또 이열치열이 최고라 하시면서요.”

갈비탕은 양질의 뉴질랜드산 쇠고기를 정육점에서 커팅한 상태로만 가져와서 일일이 비계를 떼어내고 손질해서 쓴다. 핏물 빼고 잡내를 제거한 갈비는 양념해서 갈비찜처럼 푹 끓이는데 이 맛깔스러운 국물이 바로 갈비탕의 육수 베이스다. 재료를 아끼지 않는 것도 효면옥 음식의 특징이라 인삼, 은행, 대추 등 몸에 좋은 각종 한약재가 듬뿍 들어간다. 갈비탕이 인기를 끌면서 큼지막한 갈비 여덟 대가 들어가는 특갈비탕도 메뉴로 출시됐다. 냉면과 갈비탕에 가려져 있지만 단체손님들에겐 버섯생불고기, 곱창전골 등도 수요가 꽤 있는 편.

대박집 비결 3

은평구 주민들이 한데 모여 소통하는 즐거운 사랑방 역할

“손님들 덕분에 식당 앞 불광천에 다리가 놓이고 횡단보도가 생겼어요~”

요즘 효면옥에선 갈비탕을 포장해가는 손님들이 부쩍 많아졌다. 비단 어르신이 아니어도 그릇을 가져오면 누구든 1000원을 할인해주고 있는데, 사실 은평구 차원에서 벌이는 대대적인 쓰레기 줄이기 캠페인의 일환이다. 은평구에는 쓰레기처리장이 없어서 연간 540억 원을 쓰레기 처리비용에 쓰고 있다. 인근 마포구, 서대문구에 쓰레기를 원정 보내는 셈이다.

쓰레기 문제는 은평구의 골칫거리예요. 구에서도 모아모아사업이라고 해서 유리병, 페트병 같은 재활용품을 상표 벗기고 세척해서 갖다 주면 쓰레기봉투와 교환해주는 캠페인도 벌이고 있을 정도죠. 테이크아웃 시 그릇을 가져오면 할인해주는 이벤트는 이제 한 달째인데 호응이 좋아요. 밥도 빼고 포장해가면 1000원 더 할인돼서 특갈비탕이 1만 원이거든요.”

불광천 옆에서 16년간 지역주민들과 어르신들의 사랑방 역할을 톡톡히 해온 효면옥. 그 세월만큼이나 단골손님들과의 추억도 많은데, 어르신들 마음은 쉽게 변하지 않아서 한번 단골이 되신 손님들은 대부분 끝까지 단골이시다.

10년간 1365일 매일 오시는 치매 어르신이 계세요. 지금 연세가 아흔쯤 되셨을 텐데 냉면은 1년에 한두 번 드실까 말까고 언제나 갈비탕을 드시죠. 여기 오시려고 화장도 곱게 하시고요. 얼마 전부터는 아드님이 저한테 식대를 미리 10만 원씩 입금해주고 있어요. 일주일에 한 번 오시는 103세 되신 할아버지도 계시죠. 저희 식당은 100세가 넘으면 공짜거든요. 그 어르신은 요즘에도 하루 두 시간씩 자전거를 타실 정도로 건강하셔서 저희 효면옥에도 자전거 타고 출퇴근하세요. 맛있게 드시곤 큰 소리로 , 간다!’ 하시면서요(웃음).”

마침 여든 줄의 할아버지가 출입문을 밀고 들어오셔서 비닐봉지에 사온 아이스크림을 직원들에게 내밀었다. 이분 역시 갈비탕 드시러 거의 매일 오는 단골손님이자 자칭 효면옥 회장님이시란다. 어르신들의 효면옥 사랑은 유별나서 생신 잔치를 모두 효면옥에서 치른 신사동 할머니 클럽도 있다.

초창기 때부터 오셨던 할머니들이신데 제가 너무 고마워서 돈 벌면 꼭 제주도 모시고 가겠다 했거든요. 근데 5년 뒤에 정말 가게가 너무 잘돼서 어르신들 모시고 23일간 제주도 다녀왔어요. 그때가 가을이었는데 제가 일일이 버스, 가이드, 숙소 다 섭외하느라 돈이 꽤 들었죠. 그 후로 가게에 간간이 이런 문의가 왔어요. 모임 여기서 하면 제주도 보내줘요? 이렇게요(웃음). 그분들 처음엔 열다섯 명이셨는데 이제 절반은 돌아가셨네요.”

해마다 봄이면 은평구 주민들이 다 거리로 나온다는 불광천 벚꽃축제가 바로 코앞에서 열린다. 꽃이 가장 만개하는 일주일간 무지개다리 인근은 사람들로 발 디딜 틈이 없다. 효면옥에도 한여름보다 더 많은 손님이 찾아 종일 북적북적한다.

무지개다리가 생긴 건 10년쯤 된 것 같아요. 순전히 어르신들 덕분이었죠. 먼 길 돌아서 다니기 불편하다고 구청에 민원을 넣으셨던가 봐요. 덕분에 다리도 생기고 횡단보도도 생겼어요. 효면옥은 매출이 쫙 올랐고요. 지금은 불광천 건너편 먹자골목으로 이동하기에도 편리해 유동인구가 더 많아졌죠. 무지개다리는 한여름 저녁이면 주민들이 다들 돗자리 갖고 다리 밑으로, 위로 마실 나오는 명당자리가 됐습니다.”

이래저래 효면옥은 어르신들을 빼놓고는 얘기가 되지 않는다. 어르신들의 사랑방이자 놀이터인 효면옥 벽 곳곳엔 손님으로 찾아오신 화가며 작가 등 어르신들이 직접 그리거나 써서 선물한 액자들이 걸려 있다. 멋진 붓글씨로 쓴 敬長樂園’. 과연 이곳은 어르신들의 낙원인 게, 해마다 손님이 가장 많을 때인 어버이날 전후로 신사1동 경로잔치가 열린다. 오픈하면서부터 한 해도 거르지 않았는데 올해는 코로나19 때문에 처음으로 쉬었다. 첫해 참석자가 100~150명가량 됐고 이듬해부터는 300명쯤 되는 분들이 찾아오시는 즐거운 잔치다.

이뿐만이 아니다. 작년까지 신사1동 주민자치위원장이었던 전 대표는 은평구를 살기 좋은 동네, 어르신이 공경받는 동네로 만드는 일에 앞장서고 있다. 효면옥 입구 진열대에서 각종 주전부리 과자들을 팔아 생기는 한 달 20~30만 원의 수익금은 장학금으로 내놓는다. 그는 설립 6년 된 신사1동 청소년육성회창립자이기도 하다. 은평구 16개 동 중에서 제일 늦게 시작했지만 가장 왕성한 활동을 보여주고 있다고. 은평장애인보호시설에 분기별로 짜장면 봉사를 하거나 주민센터에 쌀이며 라면을 전달하는 일도 이젠 다반사다.

냉면집이라는 특성 때문에 겨울엔 40% 정도 손님이 줄긴 해도 1년 매출이 18억 원 정도 됩니다. 그 정도면 순이익이 연간 5억 원은 돼야 하지만 실제로는 그렇게 안 돼요. 거기서 3~4억 원 정도는 경로우대 할인으로 빠지거든요. 그런데도 왜 계속하느냐고 묻는다면, 좋은 일은 멈출 수가 없어서죠. 솔직히 한 달에 1000만 원 집에 가져다주면 많이 주는 거 아닌가요?(웃음)”

전 대표는 효()라는 글자가 사라지는 날까지 어르신 할인정책을 지속할 것이라고 했다. “백종원 같은 사람이 되고 싶다고도 했다. 최소한 은평구 소재 외식업소들을 잘되게 컨설팅해주는 게 꿈이다. 바쁜 시간을 쪼개 청운대 외식경영학과에 다니고 있는 이유다. 효면옥의 진심이 어르신들을 감동시켜 불광천에 무지개다리를 놓은 것처럼, 효면옥이 있기에 오늘도 어르신들은 즐겁다. 어른이 공경받는 외식업소는 누군가에겐 희망의 무지개였다.

효면옥

본점 : 서울 은평구 신사동 34-8 / 02-303-7300

영업시간 : 오전 11~930

휴무일 : 연중무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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