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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누고 섬기는 외식인]지역 어르신들 모셔 매월 따뜻한 식사로 정을 나누는 ‘혜성’ 김기성·박혜선 대표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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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누고 섬기는 외식인]지역 어르신들 모셔 매월 따뜻한 식사로 정을 나누는 ‘혜성’ 김기성·박혜선 대표

월간 음식과 사람 2020. 7. 7. 17: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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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과사람 2020.07월호 P.80] Volunteer_나누고 섬기는 외식인

'혜성'의 김기성(오른쪽), 박혜선 대표

고창에 성공적으로 귀촌해 어르신들 식사 대접합니다~”
베푸는 게 곧 받는 것이라는 진리는 어디서도 통한다. 아스팔트나 시멘트로 둘러싸인 도시가 아니라 흙을 밟고 사는 촌일수록 그렇다. 전북 고창의 어느 귀촌한 식당 주인은 자식들이 도시로 가고 홀로 사는 어르신들을 모셔 즐거운 식사를 대접해오고 있다. 그러면 갓 뜯은 상추와 첫 수확한 포도송이 같은 것들이 따라온다. 나눔의 현장이 윗동네 마실 간 듯 정이 넘치는 곳, 고창의 메밀막국수 식당으로 가봤다. editor 조윤서 photo 김성남

서울에서 고창으로 귀촌해 메밀막국수 열풍의 주역으로 우뚝

“막국수 먹는 법을 가르쳐드리며 손님들과 대화하는 시간이 즐거워요~”

전북 고창읍성에서 도로 건너편은 고만고만한 옛날식 주택들과 새로 지은 신축 빌라들이 사이좋게 공존하는 곳이다. 도로에서 골목으로 들어서면 곧 마당 겸 주차장이 있는 고창 유일의 메밀막국수 전문점 혜성이 보인다. 20119월 오픈한 혜성은 주방을 도맡은 남편 김기성(65) 대표와 카운터를 맡은 아내 박혜선(58) 대표가 함께 꾸려가고 있다. 귀촌해서 꽤 성공한 축에 속하는 이들 부부가 고창과 인연을 맺게 된 건 자연스러운 과정이 있었다. 박 대표는 그게 남편의 취미생활에서 비롯됐다고 했다.

남편이 낚시를 좋아해서 지방을 자주 다녔거든요. 고창에 왔는데 바다도 가깝고 황토 흙도 좋고 먹을거리도 많고 하니 나이 들면 여기 와서 살아야겠다 하더라고요. 이종사촌 형님이 살고 계셔서 고창에 대한 소식을 자주 접할 수 있었어요. 어느 날 우연히 형님으로부터 220평짜리 땅이 매물로 싸게 나왔다는 말을 들었죠. 땅주인은 서울에 있고 그냥 빈터였던 걸 사두었는데, 그때만 해도 그곳에다 메밀막국수 가게를 차릴 거라곤 생각지도 못했어요.”

이들 부부가 외식업을 고창에서 처음 한 건 아니었다. 오래전 중고차 사업이 꽤 잘되고 있었는데 어느 날 김 대표가 요리사 자격증을 따겠다고 공부를 시작했다. 결국 한식, 양식 자격증을 따냈고 15년 전쯤 의정부에서 쌈밥집을 크게 차렸던 게 먼저였다.

첫 외식업이었는데 300평 규모에 주차 관리 직원까지 두고 아주 공을 들여서 오픈했어요. 결과는 8개월 만에 망했어요(웃음). 오래 하려고 이것저것 좋은 걸로 세팅했는데 손해가 컸죠. 여러 가지 원인이 있겠지만 비싼 고기를 손님이 더 달라고 하면 손익 계산 없이 막 퍼주고 그랬던 것도 이유인 것 같고. 일단 처음에 너무 크게 시작한 게 문제였죠, .”

고창에 내려와서 빈터에 식당을 열기로 마음먹고 나서는 상권 조사를 철저히 했다. 희한하게도 서울에선 흔하디흔한 메밀막국수를 파는 식당이 없었다. 이곳에서의 새 출발은 그렇게 메밀막국수 가게로 결정됐다. 고창에서 나는 건강한 식재료로 양념장을 만들고, 메밀의 본고장 춘천에서 받은 메밀 가루로 매일 반죽해서 제면기로 직접 뽑은 메밀막국수는 고창 사람들에게 점점 입소문이 났다. 보통 맛있다고 소문난 메밀국수들이 단짠단짠하면서 맵다가 중간에 가서 질리는 쎈 맛인데 이 집 막국수는 끝으로 갈수록 맛있다는 거였다. 고창에서 문을 연 새 외식업소는 부부의 인생에 커다란 의미로 다가왔고, 김 대표는 이젠 고창의 메밀전도사가 다 됐다.

재미있는 건, 그 당시만 해도 고창에 메밀막국수 파는 집이 없어서였는지 면을 드리면 비빔이건 물이건 냉면처럼 잘라 먹으려고 꼭 가위를 달라고 하시는 거예요. 저는 반죽할 때 면을 길게 뽑아내거든요. 원래 메밀면은 부드러워서 잘 끊어지는데도요. 그래서 손님들께 일일이 먹는 법을 알려드리는 게 습관이 됐어요. 아내는 이제 그만해도 된다고 하지만 저는 그러면서 손님들과 대화하는 게 좋더라고요.”

오픈 후 1년은 힘들었고 3년째부터 자리가 잡히기 시작했다. 4년째가 되자 주말이면 외지에서 손님들이 찾아왔다. 이렇게 고창 메밀막국수의 원조 격이 된 혜성에는 특유의 구수하고 담백한 메밀막국수를 먹으러 대구나 영광, 울산 등 먼 곳에서도 손님들이 찾아온다.

개업 1년 지나 매월 서른 명 남짓 어르신들께 도가니탕 대접

“텃밭에서 뽑은 상추랑 가지 같은 걸 갖고 와서 선물로 주신답니다~”

부부는 고창에서 나고 자라진 않았어도 이왕 정착했으니 지역을 위해 뭔가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가게를 오픈하고 1년이 조금 지난 20125월의 일이었다. 어떤 식으로 기여를 할까 고민하다가 지역 어르신들을 위한 무료 식사쿠폰을 발행하기로 했다. 메뉴는 집에서 만들기 번거롭고 어르신들의 뼈 건강에도 좋은 영양만점 도가니탕으로 정했다. 직접 사골을 고아 만들어낸 진국이라 혜성에서 12000원에 판매도 하는 것이었다.

사실 그때만 해도 가게가 어려웠던 시기였어요. 남편은 주방일 하느라 바쁘고 제가 주도해서 했는데 솔직히 말하면 저랑 주방 이모들은 처음엔 반대했어요. 근데 남편이 워낙에 사람을 좋아하고 어르신 공경하는 게 몸에 밴 사람이거든요. 결국 오케이하고 이종사촌 아주버니께 조언을 구해 고창군청이랑 교회에 식사쿠폰 50장을 갖다 줬어요. 근데 고창에서는 도가니탕도 잘 모르는 분들이 많았어요. 남쪽이라 더워서 선호하는 음식이 아니었나 봐요. 지금은 다들 좋아하시죠.”

박 대표는 어르신 대접하는 일이 선의에서 시작된 거라 그저 순풍에 돛 단 듯 자연스럽게 잘될 줄 알았단다. 한데 그걸 악용하는 사람들이 있었다고. 혜성이 완전히 자리 잡기 전이었는데도 쿠폰도 없이 여남은 명 되는 어르신들을 모셔와 생색내고 공짜로 먹으려는 공무원도 있었다. 50대쯤의 젊은 남자가 쿠폰을 가져와서 당연하다는 듯 먹으면서 신발이 없어졌다고 생떼를 쓰기도 했다. 이건 아니다 싶어 남편과 상의해 결국 방식을 바꾸었다.

정말 대접해드리고 싶은 어르신들은 우리네 부모님처럼 시골에 혼자 사시는 할머니, 할아버지들이셨거든요. 정작 그분들은 못 오시는 게 참 안타까웠어요. 그때부턴 쿠폰이라든가 기관을 거치지 않고 다이렉트로 해요. 주변 지인들한테 물어서 정말로 저희 혜성의 도가니탕을 대접하면 좋겠다는 분들을 매달 서른 명 정도 소개받기 시작했어요. 매월 셋째 주 토요일에 혜성에 직접 오시거나 멀어서 못 오시는 분들은 포장해서 전달해드리고 있어요.”

가는 정이 있으면 오는 정도 있게 마련. 고창도 마찬가지라, 널린 게 논이고 밭이고 하다 보니 여기선 좀 더 아기자기하고 소박한 보답이 돌아온다. 대부분 자식들이 도시로 나가고 혼자 텃밭을 가꾸고 사시는 어르신들이라 혜성에 방문할 땐 절대 그냥 안 오신단다. 각자 텃밭에서 뽑은 상추며 가지 같은 걸 싸가지고 오셔서 슬쩍 놓고 가신다고.

감사하면서 귀엽기도 하시고. 연세 드신 노부부가 함께 손 맞잡고 오시는 걸 보면 참 마음이 따뜻해져요. 어떤 할머니는 대상포진 걸려서 한참이나 입맛이 없었는데 저희 도가니탕을 아주 맛있게 먹었다며 거뜬히 나을 것 같다고 하셨어요. 서울과는 분위기가 많이 다르죠.”

가족 같은 어르신들과 함께하는 소중한 고창의 시간들

“고창 프리마켓에서 낯익은 어르신을 만나면 얼마나 반가운지요~”

어르신들께 도가니탕 대접하는 걸 계기로 혜성과 고창 사람들은 이웃사촌이 됐다. 무 농사를 짓는 할아버지로부터 시래기 잘라낸 무를 가져가서 요리할 때 쓰라고 전화가 걸려오거나, 길 가다 만난 할머니가 우리 집 뒷동산에 취나물이 엄청 많이 났으니까 시들기 전에 따러 오라는 고급 정보도 듣는다.

저는 이제 어르신들이 가족 같아요. 어쩌다 동네에서 프리마켓을 열 때가 있는데 저도 안 쓰는 가방이나 핸드백 같은 거 팔려고 들고 가거든요. 그때 아는 얼굴의 할머니가 직접 키운 감자 한 소쿠리 놓고 앉아 계시면 얼마나 반가운데요. 어르신들께 도가니탕 대접해드리지 않았으면 제가 그분들을 어떻게 알았겠어요. 이 좋은 재미있는 일을 고창에 사는 한 언제까지고 계속할 생각이에요.”

혜성도 작년에 고창군에서 주관한 한반도 첫 수도 고창 밥상’ 17개 업체에 상호를 올렸다. 박 대표는 작년에 업체 대표로 회장을 맡기도 했다. 음식을 통해 고창을 알리는 데도 열심이지만 거꾸로 그는 고창군이 귀농·귀촌인들을 위한 지원에 적극적이라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배우는 거 좋아해서 찾아서 듣는 편인데 제일 좋은 건 뭘 가르쳐줘도 무료에, 밥도 준다는 거예요(웃음). 돌이켜 생각해보면 처음부터 외지인에 대한 텃세가 없는 곳이 고창이었어요. 정말로 악인이 없고 너무 좋은 분들이 많이 사는 곳이죠. 남편도 항상 귀촌하고 싶은 분들은 고창으로 오시라며 틈날 때마다 주변에 얘기해요. 저희가 바로 그 산증인이니까요.”

고창 사람보다 더 고창 사람 같다는 말은 부부에게 돌아오는 최고의 찬사다. 오랫동안 고향을 지켜온 어르신들과 외지에서 온 젊은이들이 함께 손을 잡고 고창이 더욱 활성화됐으면 좋겠다는 게 부부의 소망이었다. 어느 더운 날 혜성의 메밀막국수를 나눠 먹으며 제2의 고향에 대한 입담화가 모락모락 싹틀 그 행복한 시간들이 눈앞에 그려진다.

혜성

주소 : 전북 고창군 고창읍 성산426

전화 : 063-563-3009

영업시간 : 오전 11~930(브레이크 타임 : 오후 3~5, 매월 첫째·넷째 화요일 휴무, 5~8월은 무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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