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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박집]팥죽 하나로 유명해진 ‘문호리팥죽’

월간 음식과 사람 2017. 12. 6. 1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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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과사람 12월호 Real Interview p.72]

대박집

팥죽하나로 유명해진 문호리팥죽백현진 · 조인숙 대표

그냥 팥죽이 아니라 문호리팥죽이에요

예전에는 동지를 작은설이라고 해서 동지 팥죽을 먹어야 한 살을 더 먹는다고 여겼다. 요즘에야 사시사철 팥죽을 먹을 수 있는 시대가 됐으니 이를 시절음식으로 생각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 땅에서 난 좋은 팥으로 제대로 맛을 낸 팥죽을 맛보기는 쉽지 않다. 어릴 적 어머니가 쑤어준 팥죽 맛이 그리운 이들에게 양평 문호리팥죽을 소개한다. 한 숟가락 떠서 넘기는 순간, 잊혔던 고향의 향수와 대박집다운 풍미를 동시에 느낄 수 있다.

 

editor 조윤서 photo 김성남

서울~양양고속도로에서 서종나들목으로 빠져나와 편도 1차선인 호젓한 양평 국도변을 드라이브하거나, 서울 방향에서 양수대교를 지나 좌회전해서 들어오다 보면 꼭 마주치는 식당이 있다. 팥죽색 바탕에 큼지막한 글씨로 써진 입간판이 저절로 눈에 들어와 안 보고 지나칠 수 없는 문호리팥죽’. 식당의 정체성을 이토록 군더더기 없이 표현한 간판이 또 있을까. 승용차가 족히 50~60대는 충분히 들어갈 듯한 넓은 주차장을 지나 출입문 앞에 서니 말끔한 청색 양복에 보타이를 맨 주인장이 나와 반겨준다. 백현진(60) 대표다. 볼거리 많고 먹을거리도 즐비한 양평에서 어떻게 팥죽으로 승부를 낼 생각을 했을까.

“9년 전쯤 식당을 개업하려고 양평에 왔다가 전통 음식점이라는 데를 들어갔는데 수십 가지나 되는 메뉴 중 유독 팥죽이 눈에 띄더라고요. 저거다 싶었죠. 어릴 때부터 즐겨 먹던 음식이었거든요. 물 좋은 양평이니 입지는 최고였고, 주변에서 팥죽을 전문으로 하는 곳이 없으니 오히려 성공할 수 있겠다 싶었습니다.”

그냥 그런 팥죽이 아니라 우리 농산물로 만든 건강 팥죽을 만들자는 것이 그의 목표였다. 남들이 하지 않는 일을 성공의 발판으로 삼은 것은 한때 정치에 몸담았던 그의 인생철학에서 비롯된 것이기도 하다.

 

대박집 비결 1

최고의 재료에 진심을 담아 정성스럽게!

음식을 속이면 손님들은 귀신같이 알아채요. 반대로 진심은 통하죠!”

 

지난해 11월 이전해왔다는 문호리팥죽의 실내는 깔끔하고 환했다. 메뉴는 단출하다. 팥죽, 팥칼국수, 얼큰칼국수, 해물파전, 감자전과 주류가 전부. 주문을 받는 즉시 끓여낸 팥죽이 커다란 옹기에 담겨 나오는데 동글동글 모양 좋은 옹심이가 둥둥 떠 있다. 흑설탕과 천일염으로 간을 맞춘 후 한 숟가락 떠먹으니 진한 팥 맛이 입안 가득 퍼진다. 팥 국물에 밥알이 들어 있지 않아 개운하다. 이에 달라붙지 않으면서 쫄깃하고 구수한 식감이 그만인 옹심이에 자꾸만 손이 갔다.

팥은 경남 산청이나 함양 등지에서 들여와요. 수입산에 비해 알갱이가 작고 쭉정이나 돌까지 들어 있어 동네 할머니들 일손을 빌려 하나하나 골라내요. 깨끗이 씻은 하루치 분량의 팥을 압력솥에 삶은 다음 완전히 식혀서 껍질째 믹서에 가는데, 바로 끓여 내갈 수 있는 상태로 냉동 보관했다가 다음 날 꺼내 씁니다. 보통 하루에 30kg, 주말에는 70kg 정도의 팥을 쓰는데, 한 달에 30가마 정도 돼요. 국물을 걸쭉하게 만들기 위해 흔히들 감자나 옥수수 전분 같은 걸 넣지만 우린 일절 안 씁니다. 옹심이가 쫄깃한 건 찹쌀, 멥쌀, 검정쌀, 현미찹쌀, 수수 등 오곡을 골고루 섞어서 만들기 때문이에요.”

팥죽 한 그릇에 1만 원인데 꽤 많은 양이다. 게다가 함께 내오는 백김치, 오이지무침, 무말랭이무침은 하나같이 리필하고 싶어지는 맛이라 특별한 한 끼 식사로 제격이다. 무말랭이무침은 고객의 요청으로 따로 판매도 한다. 팥죽과 음식 궁합이 잘 맞는 백김치에 대해 부인 조인숙(61) 씨는 이렇게 얘기했다.

배와 양파를 갈아서 단맛을 내고 잣, 대추, 밤 같은 견과류로 고소한 맛을 내요. 옹심이 만드는 오곡 찹쌀로 쑨 풀을 사용하니 더욱 구수하죠. 새우젓이나 까나리액젓도 비싼 추자도산을 씁니다. 일주일에 한 번씩 만들어서 가장 맛있게 익었을 때 손님상에 올리는데 한 접시 더 달라는 건 기본이에요. 가끔 백김치를 사갈 수 없냐고들 하시는데, 그러려면 저희가 김치 사업도 해야 해요(웃음).”

문호리팥죽의 반찬이 팥죽만큼이나 인기 있는 건 좋은 재료와 손맛, 그리고 음식은 무조건 맛있어야 한다는 백 대표의 신념 때문이다. 텃밭에서 키우는 배추, , 쪽파, 부추 같은 것들을 가져다 쓰는데 수요를 맞출 수 없어 단골 거래처에서 구입해온다.

음식을 속이면 안 돼요. 손님상에 조금이라도 거짓이 보이면 금방 들통 나게 돼 있거든요. 반대로 진심은 통한다는 게 제 철칙이죠. 고춧가루나 마늘, 젓갈 같은 건 지금도 제가 일주일에 두세 번 청량리 경동시장에 직접 가서 사와요. 가격이 문제가 아니라 품질이 좋아야 하니까요. 그러면 손님이 저절로 다른 손님을 데리고 옵니다.”

문호리팥죽은 2008113일 문을 열고 지난해 1129일 지금의 장소로 이전해오는 동안 단 한 번도 비용을 들여 광고를 한 적이 없다. 그저 입소문만으로 방송에서 취재를 하러 오고 손님이 몰려든다. 평일에는 보통 300~350명 내외, 주말에는 750~800명 정도. 주말 하루 동안 포장해가는 팥죽만 200그릇이 넘는다. 21개 테이블에 최대 수용 인원은 90명 정도다. 정직원 5명에 아르바이트생까지 평일엔 11, 주말엔 17명 정도의 직원들이 손님을 맞는다.

 

 

대박집 비결 2

 

문호리팥죽만의 아이덴티티!

멀리서 간판 색깔만 봐도  팥죽집이라는 걸 알 수 있죠

 

그는 스스로를 팥죽 장인이라 말한다. 그도 그럴 것이 지난 9년간 팥죽의 대중화를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여왔다. 무엇보다 팥죽이 겨울 음식이라는 선입견을 깨고자 했다.

조선시대에는 복날에 팥죽을 먹었다고 하죠. 찾아보니 봉이 김선달이 문호리 율평마을에서 팥죽 장사를 했다는 설화가 있더라고요. 당장 상호명을 문호리팥죽으로 정하고 상표 등록을 마쳤죠. 출입문 옆에 봉이 김선달상을 세우고 관련 콘텐츠를 액자로 만들어 걸었어요. 이야깃거리가 있으니 손님들도 흥미로워하시고 이러한 스토리텔링이 점차 문호리팥죽의 정체성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팥죽 하면 딱 문호리팥죽이 연상되도록 브랜드 이미지를 통일시키는 일도 중요했다. 그가 사시사철 착용하고 손님을 맞이하는 팥죽색 보타이는 도로변 입간판이나 포장용 쇼핑백, 명함에 새겨진 것과 같은 색깔이다. 팥죽을 연상시키는 색깔과 서체는 백 대표가 직접 고른 것이다. 고등학교 때 각종 미술대회를 석권한 실력이 어디 가겠는가.

차를 타고 지나가다가도 저 입간판에 써진 문호리팥죽이라는 서체와 색깔을 보면 손님들은 여기가 팥죽집이라는 걸 단번에 기억해낼 수 있죠. 선물용 쇼핑백은 일부러 다른 것보다 더 비싸고 고급스러운 종이로 제작했어요. 쇼핑백은 나중에 다른 용도로 쓰이니 들고 다니는 동안 저절로 저희 식당 홍보가 되니까요.”

2년 지나니 겨울과 여름 매출에 별 차이가 없어졌고 3년 차부터는 대박을 칠 거라는 예감이 들었단다. 그는 이에 안주하지 않고 팥죽을 알리기 위해 더욱 노력했다. 동지에 착안해서 매월 22일을 팥죽데이로 지정해 우리 전통 팥죽을 먹자는 캠페인도 벌이고 있다. 요즘엔 소문을 듣고 일부러 팥죽데이에 찾아오는 손님들까지 생겼을 정도.

백 대표는 2014<문호리 팥죽 이야기>라는 책도 펴냈다. 팥의 효능에서부터 이에 얽힌 설화, 홀어머니 밑에서 성장해 정치에 입문했던 자신의 인생 전반전 이야기, 문호리팥죽을 개업하면서 시작된 인생 후반전, 이웃과 더불어 살아가는 삶 등이 물 흘러가듯 담담하게 기록돼 있다. 그는 한때 영화배우였던 신영균 의원의 보좌관을 지냈고, 서른아홉 살에는 서울 중랑구의회 의장을 역임했으며, 강남구에서 웅변학원을 경영했다. 군대, 미술, 정치 이 세 가지는 오늘날의 백현진 대표를 설명해주는 키워드들이다.

 

 

대박집 비결 3

 

5성호텔급 서비스 제공!

전 직원 유니폼+위생모 착용, 빈틈없는 서비스, 환경보호까지

 

개점부터 폐점 시간까지 끊임없이 손님이 찾아오는 비결은 뭘까. 그는 식당 운영에도 기업처럼 경영 원칙과 전략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손님은 늘 무언가를 요구해요. 돈을 지불하니까 당연한 거죠. 그런 손님들을 잘 살피면 앞으로의 플랜이 나와요. 팥죽보다 얼큰한 맛을 좋아하는 손님을 위해 얼큰칼국수를 개발했더니 이제는 일부러 먼 곳에서 찾아옵니다. 주말에만 100그릇씩 나가는 효자 메뉴예요.”

 

무엇보다 문호리팥죽의 CEO로서 그가 늘 강조하는 덕목은 일관된 서비스다. 테이블 위의 수저통, 냅킨통, 설탕과 소금 그릇, 메뉴판은 일정한 방식대로 한 치의 흐트러짐 없이 세팅해야 한다. 주방 직원뿐 아니라 홀 서빙 직원들도 흰 유니폼과 위생모를 착용해야 한다.

“5성호텔 주방장들도 홀에서는 위생모를 안 쓰죠. 하지만 열 번 잘해도 한 번 잘못하면 손님들은 발길을 끊어버리거든요. 손님이 부르면 즉각 대답하고 통일된 존칭을 쓰도록 교육합니다. 여직원들은 립스틱을 꼭 바르되 손에는 절대 화장품을 바르지 않는 게 철칙이고요.”

물 좋고 산 좋은 문호리에서 팥죽집을 하다 보니 환경보호에 대한 나름의 신념도 생겼다. 북한강 상수원 보호를 위해 주방에서는 수저와 컵을 설거지할 때만 세제를 사용하고, 나머지는 팥 국물을 사용한다. 팥은 인체의 노폐물을 제거해줄뿐더러 신기하게도 설거지에도 탁월한 효과가 있단다. 이처럼 기업가의 마인드로 문호리팥죽을 경영한 지 어언 9. 그동안 이곳을 다녀간 손님층도 다양하다. 최근엔 경기관광공사와 연계된 관광 코스의 일환으로 외국인 손님들도 많이 온다.

 

대박집 비결 4

즉석 생생 팥죽 배달업 스타트업!

문호리팥죽 배달 왔어요~” 수도권 배달 서비스 곧 오픈!

그는 이제 문호리팥죽을 발판으로 해서 주변 사람들의 성장을 도와주려 한다. 하지만 아무에게나 쉽게 허락하지는 않는다. 부지런하고 정직해서 문호리팥죽의 이미지와 명예에 걸맞은 사람이어야 한다.

팥은 부정한 걸 내쫓는 길조의 의미가 있어요. 그러니 지금 어려운 형편에 있는 사람은 모두 저한테 오라는 겁니다. 곧 수도권 팥죽 배달 시스템을 구축할 생각입니다. 일명 생생 팥죽 배달업이에요. 서울의 마지막 전철역인 양원역에서 고객이 주문한 팥죽을 전달해주는 거죠. 배달시간을 최대한 단축하는 게 관건인데, 우리 팥죽은 실온에서 7시간 동안 맛이 변하지 않으니 충분히 가능합니다. 보증금 없이 청년 구직자든 실업자든 도전할 수 있어요.”

다만 여기에는 한 가지 조건이 있다. 그와 함께 생생 배달업을 할 사람은 하루 100원 기부운동본부에 동참해야 한다는 것. 그가 창설한 이 운동본부는 장애인단체인 주몽재활원에 직접 계좌 후원을 연결해주고 있다. 문호리팥죽에 제일 먼저 출근하고 마지막으로 전등을 끄고 퇴근하는 사람, 백현진 대표. 그는 평생 어머니에게서 물려받은 개성상인의 피를 절대 허튼 일에 쓰지 않았다. , 담배는 물론 그 흔한 당구나 골프도 가까이 한 적이 없다. 일이 취미라는 그에게 앞으로 어떤 계획과 비전이 있는지 물었다.

팥죽 장인으로서 초심을 잃지 않을 겁니다. 더 많이 팥죽을 알리고, 옛날식 팥빙수도 론칭할 거예요. 장 담그는 솜씨가 뛰어난 아내와 더불어 장도 만들어 팔 겁니다. 문호리는 사시사철 아름답지 않은 시절이 없어요. 봄이 오면 북한강변에 늘어선 벚나무에 화사한 꽃이 한가득 피죠. 이렇게 멋진 곳에서 제 곁에 있는 사람들과 좋은 것을 나누고 더불어 사는 게 소망입니다. 지금까지 함께해준 가족과 직원 모두에게, 무엇보다도 지난 9년간 문호리팥죽을 찾아주신 고객님들께 깊이 감사드립니다. 앞으로도 변함없이 좋은 모습 보여드릴게요.”

문호리팥죽 www.moonhori.com

(031)774-5969

경기 양평군 서종면 북한강로 641(문호리 952-5)

영업시간 오전 1030~오후 8(주말은 저녁 730분까지)

매주 월요일과 명절은 휴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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